생각의 편린들

소통 만능의 시대, 흔들리는 언론 위상

새 날 2017. 7. 5. 15:02
반응형

지난 달 29일, 한국 언론계에 상징으로 남을 법한 사건 하나가 불거졌다. 회원들의 후원으로 운영돼오던 '오마이뉴스'의 10만인클럽 후원자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더니 급기야 15,000명 아래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네티즌들은 일제히 쾌재를 불렀다. 당시 관련 게시글들은 하나 같이 높은 조회수와 추천수를 기록했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관심이 많았노라는 방증이다.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한 언론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후원자 수의 급감을 이토록 반겨하는 대중들이라니, 그 모습은 참으로 생경하기 짝이없다. 


그동안 진보 언론 매체로서의 지위를 톡톡히 누려온 오마이뉴스를 향한 대중들의 급작스런 변화를 우리는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자못 혼란스럽다. 하지만 이러한 조짐은 문재인 대통령의 탄생 즈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니 실은 그 이전부터 서서히 변화를 거듭해온 셈이다. SNS 등 소통 도구의 발달이 가져온 시대적 변화의 조류에 언론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서부터다. 이제껏 형성해온 지형의 단맛에 취한 채 권력을 마음껏 휘둘러온 언론을 향해 대중들이 견제구를 던진 것이다. 



언론을 사유화하다시피 했던 이전 정권의 무리수로 인해 대중들의 언론을 향한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삐딱하다. 진보 언론이라고 하여 예외일 수는 없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결국 진실과 정의보다 자신들의 이익 쪽으로 기우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대중들은 언론 권력에 맞서기 시작했다. 이는 고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한 경험으로부터 체득되어진 학습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주요 타깃은 이른바 진보 언론으로 일컬어지는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였다. '한경오'를 향한 견제의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져갔다. 네티즌들은 그들의 문제점을 자발적으로 찾아낸 뒤 요목조목 비판에 나섰다. 


기자라는 직업인은 언젠가부터 '기레기'라 불린다. 칼보다 무섭다고 하는 펜을 마음껏 휘두르는 그들이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걸까? 직업인으로서의 소명 의식이 부족한 데다가 사회적 공기로서의 책무를 망각하고 지나치게 사익만을 추구해온 덕분이다. 대중들의 언론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은 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 당시 백악관에서 한국 기자들의 취재 경쟁으로 인해 빚어진 작은 소동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하지만 언론의 위상이 위축되고 흔들리고 있는 건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다. 미국에서도 수난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전 지구적 현상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러한 수난이 우리처럼 대중들에 의한 것이 아닌,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굳이 다르다면 다르다. 주류 언론을 향해 '가짜 뉴스’라며 패기 있게 맹공을 퍼붓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CNN방송을 프로레슬러처럼 때려눕히는 패러디 영상을 트위터에 올려 물의를 빚고 있다. 



트럼프는 한 발 더 나아가 “부정직한 언론은 우리가 위대한 미국인들을 위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절대 막을 수 없다”는 취지의 글을 올려 기성 언론을 향한 그의 반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렇듯 최근 한국과 미국의 언론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 건 그 주체만 다를 뿐 사실상 서로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음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SNS 등 소통 도구가 눈부시게 발달한 시대의 언론은 그렇지 않던 시절과는 크게 다르다. 대중이 정치와 접촉할 수 있는 방식은 그동안 주로 언론이라는 매개를 통해 이뤄져왔으나 근래엔 이러한 매개 역할 없이 정치인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시민들로부터 문자폭탄 세례를 받은 모 정당 소속 정치인들의 떨떠름한 하소연은 그의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위정자들이 정치를 올바로 구현하지 못하자 대중들이 직접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섰다. 시민의 대리인임을 자처하던 직업 정치인들이건만 국익과 공익보다는 사리사욕에 매달린 채 제 역할을 온전히 못했기 때문이다. 간접 민주주의의 한계를 경험한 대중들은 몸소 목소리를 높이거나 직접적인 참여 활동을 통해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통이 만능인 시대에 소통이 미흡하자 SNS 등의 도구로 중무장한 대중들이 직접 소통을 꾀하며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고 있는 셈이다. 


언론을 둘러싼 환경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SNS의 발달은 사회 구성원 간 소통이 원활해지도록 접촉면을 넓히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으며, 이들 도구를 활용한 직접적인 소통 방식이 증가하면서 그동안 매개 역할을 해오던 언론의 위상은 점차 위축돼가고 있다. 간접 민주주의가 제 역할을 못하자 소통이 무기인 직접 민주주의가 꿈틀거리면서 직업인으로서의 정치인들의 위상이 주춤거리고 있는 것처럼, 언론이 딛고 서 있는 토대 역시 점차 흔들리고 있는 양상이다. 


소통 만능의 시대다. 우리나라나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언론과 언론인들이 누려오던 막강한 권력과 지위는 근래 더 이상 맥을 못추고 있다. 과거 화려했던 언론의 위상은 이제 예전만 못하다. 대중들이 길들이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할 경우 자칫 도태라는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만큼 언론엔 힘겨운 싸움이 될 전망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