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사람이 중심인 사회로 변모돼야 한다

새 날 2017. 7. 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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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 대해 꼬집고 나섰다. 그런데 그 내용을 살펴보니 차마 반박이 불가할 만큼 뼈아픈 지적 일색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세르게이 쿠르바노프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 교수가 지난달 30일 총영사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일행을 만나 "러시아는 개인의 성품과 가치를 중요시하는데, 한국사회에서는 위 아래 관계가 더 중요하다. 과장이냐 교수냐 강사냐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며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그 어느 곳보다 인권이 존중 받고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고 있는 북미나 유럽의 선진국, 그도 아니면 적어도 이웃나라 일본 정도의 수준에 이르는 국가가 그리 지적했다면 기분은 다소 좋지 않더라도 그나마 고개를 끄덕이며 비교적 쉽게 수긍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러시아로부터 이러한 지적을 받고 보니 우리의 자존심에 심한 스크래치가 생기는 느낌이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하다. 그러나 이들의 지적을 결코 틀렸다고 외면하거나 폄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팩트 폭격으로 다가올 만큼 우리의 문제점을 제3자의 시선으로 날카롭게, 그리고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발전을 거듭할수록 돈과 권력이 최고의 가치임을 재확인시켜 주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경제 토대 위에, 한국식 학벌주의가 씨앗을 뿌려 새싹을 틔우고 급속히 성장하더니 그 뿌리가 굳건히 다져져 어느덧 이를 기반으로 한 암묵적인 서열이 사회 전반을 지배해왔다. 여기에 장유유서가 덕목인 유교문화, 남성이라면 통과의례인 군대 조직으로부터 파생된 군사문화까지 한데 뒤엉키면서 다른 국가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한 한국만의 서열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경우 나이부터 물어보는 게 일상이고, 왠지 행색이 초라해 보이면 일단 무시부터 하고 보는 경향이 있다. 나이를 따져 물으며 굳이 서열화해야 마음이 편해지고 직성이 풀리는 우리네 아닌가 싶다. 그다지 좋은 습성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와 만나 대화를 나누기 위해선 나이가 됐든 아니면 사회적 지위가 됐든 어떡하든 서열과 우열을 가린 뒤 끝내 위 아래를 결정해야만 한다. 이런 게 대체 뭐가 중요하다고 다들 여기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에 맞춰지기 일쑤다.


같은 직장에서 동일한 직무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대우는 천차만별이며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크게 달라진다. 심지어 퇴직 후에도 어떤 직장에서, 무슨 직책으로 퇴직했느냐에 따라 주변과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물질 만능, 황금 만능 주의가 팽배한 세상 속에서 과연 무엇이 올바른 가치관이며 덕목인지 우리는 갈 길을 잃은 채 허우적거리면서 방황하고 있는 모양새다. 



누구나 대학 서열을 줄줄 읊고 다닐 만큼 대학부터 직장까지 줄세우기가 만연돼 있으며, 심지어 유치원 단위까지 그의 영향권 아래에 놓일 정도로 그 수준은 자못 심각하다. 사회에서의 성공이란 이 줄세우기 전쟁에서 소위 잘나가는 위치에 자신의 깃발을 꽂은 채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일이 돼버렸다. 그 경쟁이 공정한 룰 속에서 치러지면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알다시피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은 제법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인 경우가 허다하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다. 


줄세우기의 최상단 포식자 그룹에 위치해 있는 이들은 이렇듯 애초 비뚤어진 환경은 애써 무시하고 무조건 '노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그 아랫단에 놓인 이들을 다그친다. 덕분에 그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막다른 좁은 길은 늘 북새통이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써가면서 사교육에 올인하는 일은 이제 그다지 놀라운 현상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상생과 협력 그리고 공정한 경쟁을 중요한 가치로 받들고 이를 가르치는 국가의 품격과, 그와는 반대로 구성원들이 오로지 남들보다 앞서기 위한 요량으로 비싼 사교육을 통해 좋은 고교,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국가의 그것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듯 한 국가의 품격은 단순히 경제적 볼륨만으로 정해질 수 없듯이 사람의 됨됨이 역시 사회적 지위, 자산, 학벌 등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본디 그가 지닌 인성과 성품으로부터 비롯되는 경향이 크다. 때문에 직책과 부로 사람을 줄세우기하는 사회는 단언컨대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성장 지상 주의에 매달린 채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오로지 한 방향만을 바라보면서 쉼없이 달려왔다. 물론 이는 어떡하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하고 치열한 무한경쟁의 척박한 환경 속으로 내쳐진 결과물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도대체 얼마나 지독한 속물로 비쳤길래 외부에서 그들의 시선으로 이렇듯 따갑게 경고하고 나선 것일까? 


이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돈과 권력 그리고 서열이 아닌, 본격 사람이 중심인 사회로 변모돼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한국사람들은 인간의 성품이 아닌, 유독 직책만을 따진다'는 그다지 듣고 싶지 않은 쓴 소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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