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취재 경쟁에 나선 기자에겐 잘못이 없다

새 날 2017. 7. 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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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연일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는 가운데 백악관 집무실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이 또 다른 화제거리로 등극했다. 당시 기자단의 열띤 취재 경쟁으로 인해 집무실 현장은 다소 혼란스러웠고, 이를 두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 취재진을 향해 짜증을 내며 꾸짖었다는 외신과 국내 언론보도가 잇따른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규모의 기자단을 꾸린 한국의 취재진이 유난히 많았던 탓에 집무실 기자회견장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그러던 찰나 트럼프 대통령 곁에 위치해 있던 탁자 위의 전등이 쓰러질 뻔하면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언론보도가 잇따르자 네티즌들은 흡사 물 만난 고기마냥 기자들을 향해 '기레기'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등의 격한 반응을 일제히 쏟아내고 있는 양상이다. 아울러 이번 대통령의 미국 방문길에는 윤창중 같은 사람이 없으니 기자가 몸소 나서서 대한민국을 톡톡히 망신시키고 있다며 한결 같이 격앙된 목소리로 이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런데 곰곰이 이번 해프닝을 되짚어보니 기자단의 행동이 과연 이렇게까지 욕을 얻어먹을 만한 사안이었을까 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기자들의 취재 장소는 당시 백악관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공간이었고, 때문에 때와 장소를 구별하지 못한, 아니 안 한 듯한 기자단의 과도한 취재 경쟁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다른 시각으로 한 번 바라보자. 저널리즘에 입각한 올바른 진실 전달이 언론과 기자의 올곧은 직업적 소명이라고 한다면, 기자들 사이에서 취재 경쟁이 이뤄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 아닐까? 때문에 그들의 직무가 펼쳐지는 공간에서는, 거기가 어떤 곳이든 관계없이, 취재 경쟁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일 테다. 즉, 약간의 소동은 있었으되, 이러한 과정은 특정 사안에 대한 취재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는 의미다.



난 외려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몹시 못마땅하다. 물론 지나친 취재 경쟁으로 인해 탁자 위에 놓인 전등이 쓰러질 뻔한 위태로운(?) 상황이 전개되긴 했으나, 그렇다고 하여 멀리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손님으로 찾아온 이들을 향해 짜증을 내면서까지 공공연하게 꾸짖는 건 집 주인으로서의 예의를 크게 벗어난 행동이 아닐까 싶다. 집에 찾아온 손님이 실수를 저질러 집안의 무언가를 깨뜨렸다고 가정해 보자. 나 같으면 그 손님이 어른이건 아이이건 간에 그 바로 앞에서 면박을 주거나 꾸짖는 행동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다. 


최악의 경우 전등이 쓰러져 큰 소동으로 불거졌다고 해도 자신들을 찾아온 손님이니까, 더구나 취재 경쟁이 치열하다는 사실은 집 주인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지대하다는 좋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사안이기에, 그냥 모른 척 조용히 웃으면서 그 상황을 부드럽게 모면했을 듯싶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행위 뒤로는 그의 오만함이 강하게 묻어 나온다. 하긴 전 세계 국가를 쥐락펴락할 만큼의 패권을 쥐고 있는 초일류 국가의 수장이자 그 어느 누구보다 극우적 사상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기에 왜 아닐까 싶긴 하다. 트럼프의 오만함은 이미 검증 단계를 훌쩍 벗어났다. 파리기후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그의 면모가 가감없이 드러난 바 있기 때문이다. 


뉴욕포스트 캡처 이미지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성사되자 트럼프와의 악수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그의 기행에 가까운 악수로 인해 자칫 정상회담에서 기선을 제압 당하는 일이 발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가뜩이나 신경 써야 할 사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희한한 사람 하나 때문에 별 대수롭지도 않은 일마저 신경을 기울여야 할 판국이니 어이없다는 표현 외에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다. 그만큼 트럼프의 태도는 막무가내다. 진상이라고 하여 외면할 수도 없는 처지이기에 더욱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일부 기자들이 '기레기'라 불리는 건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다. 때문에 '기레기'라는 네티즌들의 표현은 일견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기자들을 '기레기'라 부르는 건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다. 백악관에서 불거진 우리 기자단의 취재 경쟁은 저널리즘에 입각한, 기자로서의 직무에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 해프닝에 가깝다. 다만 백악관이라는 특수한 장소, 아울러 트럼프라는 희대의 인물과 동일한 공간에 있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단언컨대 취재 경쟁에 나선 우리 기자들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이를 꾸짖은 자가 비정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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