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배려 없는 사회가 그려내는 씁쓸한 풍경

새 날 2017. 6. 3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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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피우며 길을 걷는 흡연자 때문에 뒤에서 걷던 아이의 볼에 담뱃불이 튀었으나, 흡연자가 사과는커녕 부모에게 아이 간수 잘하라며 되레 화를 내더라는 사연이 며칠 전 기사로 올라왔습니다. 이를 보면서 전 드디어 올 것이 온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길을 걸으며 흡연 중이던 흡연자의 담뱃불로 인해 한 아이가 실명한 뒤로 거리 전체가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일본의 사례가 문득 떠오른 것입니다. 비단 이러한 사례뿐만이 아닙니다. 근래 길을 걷다 보면 흡연자가 내뿜는 담배연기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물론 흡연자들에게도 할 말은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울러 그들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건물 실내가 금연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흡연을 할 수 있는 그들만의 고유 영토가 대폭 축소되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들입니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마음 놓고 흡연할 수 있는 장소는 실외로 한정 지어졌고, 그나마도 거리 위가 가장 만만한 공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노컷뉴스


하지만 알다시피 거리는 흡연자들만의 공간이 아닙니다. 흡연자뿐 아니라 비흡연자들도 함께 어우러지며 생활하는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흡연 행위를 할 땐 비흡연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흡연은 비흡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일방적인 민폐 행위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의 흡연자들은 과연 자신들과 다른 처지에 놓인 이들을 충분히 생각하며 배려하고 있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해당 기사의 말미에서 언급된 아래의 제안과 그에 따른 네티즌들의 답변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비흡연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 보행 중 흡연을 전면 금지하면 어떨까요?"



대중교통의 좌석 일부를 노약자석으로 지정해 놓았으나 임신부들에겐 그림의 떡인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래서 고안된 게 다름아닌 좌석 중간중간에 분홍색으로 치장하여 이쁘게 꾸며놓은 별도의 공간 임신부석입니다. 지하철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임신부라면 언제든 그곳에 앉을 수 있도록 항상 비워두어야 하는 자리가 바로 임신부석입니다. 그렇다면 이 좌석이 애초의 취지대로 잘 운영되고 있을까요? 


그러나 대부분의 승객들은 임신부석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니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것 같습니다. 무늬만 임신부석일 뿐 일반 좌석과 거의 동일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주변 사람들의 다수가 타인에 대해, 심지어 교통약자에게까지, 무신경으로 일관하고 있는 게 우리네의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여성 전용칸'이 재등장했습니다. 남성들의 무수한 반발을 불러온 이 여성 전용칸은 배려라곤 결코 없는 대중교통의 험악한(?) 던전 속에서 그나마 교통약자들에게 작은 힘을 보태주리라 기대하게 합니다. 


최근 목줄이 풀린 애견이 길을 걷던 아이를 물어 중상을 입힌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가 빚어질 때마다 애견인들을 향한 비난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곤 합니다. 근래 애견인들을 향한 원성이 더욱 자자해지고 있는 건 애견 인구가 부쩍 늘어난 만큼 매너를 갖추지 못한 애견인의 비율 또한 그에 비례해 늘었기 때문입니다. 비단 맹견이 아니더라도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애견은 모든 사람들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목줄 없이 애견을 산책시키는 애견인들의 비율은 의외로 많습니다. 애견이 배변한 뒤 뒷마무리를 깔끔하게 처리하지 않는 애견인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이종(異種) 관계인 개와 사람이 함께 어울려 공존하기를 바란다면 애견인들의 배려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애견인들의 증가에 비례해 그렇지 못한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급기야 애견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구역마저 등장했습니다. '노펫존'이라 불리는 애견출입금지구역이 확산일로에 있다는 소식입니다. 


대중장소에서 버릇 없는 아이를 타이르기는커녕 그대로 방치하거나 오히려 두둔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엄마를 일컬어 '맘충'이라는 식의 비하 표현이 남발하더니, 아이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서비스 업소, 즉 '노키즈존'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결과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휴대폰을 보며 길을 걷는 행위는 본인에게도 위험한 노릇이지만 그보다는 주변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들을 싸잡아 '스몸비족'이라 호칭하며 골칫거리로 전락하자 전 세계적으로 벌금을 매기는 등 특단의 조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앞서 든 사례 모두는 개인주의가 보편화되면서 발현되는 과도기적 현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개인주의에서 비롯됐든 아니면 이기주의에서 비롯됐든 보다 분명한 건, 일부 사회 구성원들이 타인을 배려 않는 행위를 일삼으면서 구성원 다수로 하여금 불편함과 불쾌함을 유발케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배려가 부족하다 보니 모두가 공존하는 방식의 삶을 도모하고 이를 실천하기보다 자꾸만 사회 구성원들의 사이를 이쪽 저쪽으로 세세하게 분류시켜 서로가 서로를 헐뜯으며 갈라놓고 있는 형국입니다. 배려 없는 사회가 그려내고 있는 풍경은 이렇듯 씁쓸함 일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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