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나의 숨을 멎게 한 이미지 한 장

새 날 2017. 6. 2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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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이 377잔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커피 소비량은 연평균 7%의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먹는 가공음식엔 김치 대신 어느덧 커피가 그 자리를 꿰찼다고 한다. 괄목할 만한 성장인 데다가 달콤한 실적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현실은 그다지 달콤하지 못하다. 알다시피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커피를 재배하기 위해 미취학 아동들까지 커피 농사에 동원되는 등 노동력 착취의 그림자가 달콤한 실적 위로 늘 어른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는 전 세계적으로 천문학적인 양이 소비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이윤은 거대 커피회사인 다국적 기업과 소매업자, 중간거래상들의 몫이고, 정작 직접 커피를 재배하는 농업인들에겐 쥐꼬리 만큼의 이윤만 돌아가는 매우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갖고 있다. 


ⓒ이투데이


뿐만 아니다. 명품이나 유명 브랜드의 뒤에도 어김없이 노동력 착취라는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최근엔 프랑스 장인의 손길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만든 것으로 알려진 '루이뷔통'이 임금 착취 논란에 휩싸였고, 영국의 유명 의류 브랜드들은 터키에 공장을 세워 다수의 시리아 난민의 노동력을 헐값에 착취하고, 특히 어린이들까지 고용하면서 영국인들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을 분노케 한 바 있다. 유명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 역시 과거 동북아시아에서 값싼 노동력을 착취했던 화려한(?) 전력이 있다. 물론 최근에도 비슷한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두를 한 번에 압도하는 사례가 있다. IT계의 명품이라 일컬어지는 애플 제품을 생산하는 대만 제조업체 '폭스콘'이다. 폭스콘은 저임금, 과도한 노동시간, 직원에 대한 비인격적 대우로 악명이 높은 기업이다. 이러한 열악한 근로 환경 속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직원들은 종종 막다른 길인 죽음을 택하곤 한다. 지난 2010년 18명의 직원이 잇따라 자살을 시도하였고, 이중 14명이 목숨을 잃은 이래 폭스콘은 '자살 공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지 오래다. 이후에도 매년 십여 명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폭스콘 직원들은 매일 12시간 동안 휴식 시간도 거의 없이 일을 해야 하고, 할당량을 못 채울 경우 관리자에게 질책을 당하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야근이 일상이면서도 그에 적합한 수당을 제대로 챙길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하게 일을 해야 하는 여건이란다.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조차 눈치를 봐야 한다고 하니 이곳의 직원들은 사람이 아닌, 말그대로 기계 부속품에 불과한 셈이다. 자살 공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기업답게 회사 건물의 외관 역시 왠지 살벌함 그 자체였다.


온라인 커뮤니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돌아다니는 이미지 속에는 폭스콘 건물 사이로 거대한 그물 같은 게 펼쳐져 있는데, 다름아닌 자살 방지용 그물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해당 이미지를 보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멎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충격 그 자체다. 이렇듯 살벌한 곳이 사람들이 함께 숨을 쉬고 부대끼며 생활하는 공간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중앙일보


뿐만 아니다. 직원들의 기숙사 숙소 창문에도 어김없이 자살 방지용 창살이 설치돼 있었다. 교도소보다 더 촘촘한 창살 사이로 밖을 넌지시 바라보는 직원들의 모습은 흡사 모든 걸 포기하고 내려놓은 듯한 헛헛한 표정 일색이다. 자살이 발생하고 있는 원인을 찾아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단순히 이를 피상적으로 막으려는 데만 급급해 보이는 회사 측의 조치는 어이없다 못해 황당하기 짝이없다.


ⓒ중앙일보


우리가 생활 속에서 소비하는 제품들, 특히 디자인이 미려하거나 가치가 남다른 제품들일수록 이를 제조하는 과정 속에서 타인의 고통과 눈물 그리고 피와 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기업이 여전히 자신들의 방식대로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화나게 한다. 입과 코를 자극해오는 깊은 풍미의 커피, 그리고 소비자의 감성을 제대로 간파한 듯 이를 파고드는 아름답고 우아한 고급스런 제품들, 사실 그 이면에는 이렇듯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고름 짜내듯 힘껏 쥐어짠 영혼의 대가인 에너지가 깃들어있는 셈이다. 


커피 유통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반 세기 전부터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공정무역 운동이 전개돼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공정무역 운동이 시작됐다. 비단 커피뿐만이 아니다. 사회 곳곳에서 이른바 '착한 소비'라 불리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고통 속에서 쏟아내어진 에너지에 대한 공정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노라는 일종의 소비자 운동이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마셔오던 커피, 그리고 일상에서 소비되는 많은 제품들 속엔 이렇듯 그들의 노고와 정성이 듬뿍 담겨 있다. 비단 '공정무역'이니 '착한 소비'와 같은 거창한 목소리를 내지는 못 하더라도 평소 해당 제품을 소비하면서 그 이면으로 여전히 전 세계 노동자들의 땀과 노력이 깃들어있다는 사실만큼은 절대로 잊어선 안 될 것 같다. 특정 제품의 소비는 곧,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행위와 진배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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