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시민이 언론을 견제하는 시대

새 날 2017. 5. 14.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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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한경오'라는 표현이 자주 오르내린다. 보수 언론의 대표주자격인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한데 묶어 '조중동'이라 줄여 부르듯이 이들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더 진보 쪽으로 기운 것으로 판단되는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를 싸잡아 부르는 용어다. 심지어 이들 진보 언론을 향해 '가난한 조중동'이라는, 매우 굴욕적인 표현마저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오마이뉴스 기사 하나가 네티즌들의 심기를 단단히 건드린 모양이다. 14일 청와대 관저로 이사하던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취재하면서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를 김정숙 씨로 묘사한 탓이다. 그다지 큰 이슈일 것 같지 않던 이번 해프닝은 대통령 부인에 대한 호칭이 오마이뉴스 회사의 방침이라는 해당 기자의 해명이, 과거 그의 기사 내용을 검색한 네티즌들의 팩트 체크에 의해 거짓임이 들통나면서 네티즌들의 분노를 더욱 촉발시키고 있는 모양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당선시킨 시민들은 대통령의 탈권위적이면서도 시원스런 행보에 연일 사이다를 외치며 박수를 보내고 있는 입장이다. 지금 온라인상에서는 문빠, 문슬람 등을 자처하며 마치 인기 아이돌마냥 팬덤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물론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긴 했다. 하지만 당시와 비교해 지금은 질적으로 달라도 너무도 달라진 모습이다. 


우선 이념 성향과 그와 관련한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 지난 정권은 지역 및 이념 갈등을 권력의 연장 도구로 삼아 이를 지속적으로 유발하고 이용해 왔다. 이에 신물이 난 시민들은 복잡하고 진부한 진보 보수라는 낡은 이념보다는 정상과 비정상 그리고 상식과 몰상식이라는 지극히 단순화된 구도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번 19대 대선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드러났다. 지역 및 이념 구도가 이전 선거들에 비해 크게 약화된 것이다.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특정 지역과 이념을 뛰어넘어 전국적으로 고르게 득표하면서 명실공히 대한민국 전체를 아우르는 지도자로 우뚝섰다. 좌파 우파로 나누며 여전히 이념 갈등을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내세운 후보보다는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회로의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를 국민들은 국가지도자로 선택한 것이다. 



언론을 향한 네티즌들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처럼 진보 언론이라고 하여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진보 언론들이 도덕적인 우위를 핵심 무기로 내세우고 있지만, 종국엔 자신들의 이익을 따를 것이라는 사실을 선험적으로 터득한 까닭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보 정치인들을 마구 물어뜯던 종편이 문재인 대통령 당선 시점 이후부터 태세를 전환,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듯, 이들 역시 언제든 자신들의 이익과 입맛에 따라 색깔을 달리할 수 있음을 네티즌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잃게 만든 건 과거 권력이 결정타였으나, 당시 진보를 표방하던 언론들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네티즌들은 한 번 당하면 됐지 두 번 당할 수는 없다며 아예 문재인 대통령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와 비슷한 조짐은 진작부터 있어 왔다. 대통령선거 당시 한 자리 숫자에 불과하던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 내 대선 주자의 경선이 끝남과 동시에 급작스레 치솟는 현상을 두고 일부 언론, 특히 진보 성향 언론의 안철수 후보 띄우기 플랜이 의심스럽다며 네티즌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견제했던 바다.


결국 오마이뉴스의 기사로부터 촉발된 진보 언론을 향한 집중 포화는 문재인정부의 안착과 성공을 바라는 열성 지지층의 언론을 향한 일종의 견제구에 가깝다. 물론 이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낡은 이념의 영역을 과감히 뛰어넘은 사안이다. 그동안 진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오히려 더욱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왔듯, 시민들 역시 진보 언론을 향해 더더욱 까다로운 견제를 할 공산이 높아졌다.


이는 새로운 신호탄이다. 낡은 이념 구도 속에서의 도덕적 우위를 내건 선명성 경쟁보다는 상식이 통하고 정상적인 사회를 갈망하는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언론 역시 과거의 틀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경고하고 나선 셈이다. 이는 언론이 정치권을 철저히 견제하고 있듯, 이젠 시민이 언론을 본격 견제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진보 진영이든 보수 진영이든 언론사와 기자 신분이라면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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