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진정한 스승의 품격이란

새 날 2017. 2. 1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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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라는 은어가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기성세대나 선생님을 뜻하지만, 보통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신념을 일반화하여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려는 성향의 사람을 일컬어 그렇게 칭한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서울디지텍고등학교 교장이 지난 7일 종업식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부당함을 주장하여 파문이 일고 있다. 물론 그럴 리는 추호도 없겠으나, 혹여 그의 주장이 객관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손쳐도 제자들을 모아놓은 학교 공식 행사에서 지극히 정치적으로 편향된 발언을 일삼은 건 오지랖을 넘어 교사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중앙일보


그러니까 이분이 무얼 생각하고 있든, 아울러 어떠한 색깔의 정치적 신념을 지녔건 간에 그건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 의지에 속하는 사안이다. 때문에 솔직히 이분이 무슨 생각을 하든 이는 내 관심 밖의 영역이다. 물론 그의 신념만큼은 존중해주고 싶다. 다만, 그 머릿속 신념을 입밖으로 꺼내놓는 순간 모든 게 달라질 수 있음을 해당 교장이 간과하지 않았나 싶다. 교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가진 사람이 지극히 사적인 신념과 주의 주장을 공적인 행사에서 공공연하게 밖으로 꺼내어 제자들에게 표출, 강요함으로써 그는 스승이 아닌, 졸지에 꼰대로 전락해버렸으니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부역자들이 국정농단을 일삼은 사실은 엄연한 팩트이고, 때문에 현재 특검이 이를 수사 중인 사안이며, 헌재가 탄핵 인용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는 곧 해당 교장이 주장하고 나선 것처럼 일련의 사건들이 정치적이라기보다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 판단과 관련한 사안이라는 의미이다. 



해당 교장은 우리 사회에 정의로움이 부족하거나 사라졌다는 발언을 했다. 탄핵이라는 지극히 법적인 사안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발언이다. 


물론 이는 얼토당토 않다.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 보자면 결코 틀린 주장도 아니다. 왜냐하면 헌법을 유린하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오남용해온 박 대통령과 그의 부역자를 비롯한 현 집권세력이 대한민국 전체를 나락으로 떨어뜨려 정의가 사라지게 한 사실은 분명한 팩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박 대통령의 탄핵은 대한민국이 다시금 정상적인 사회로 가느냐 혹은 그렇지 못하느냐의 중요한 갈림길에 해당하고, 상식적인 사회로 올곧게 설 때에 만이 비로소 사라진 정의를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중앙일보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교장의 발언은 지극히 정치적인 편향성을 띠고 있으며, 자신의 그릇된 신념을 일반화하여 제자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나선 셈이다. 이에 대해 "정의와 진실을 말씀하시는 교장 선생님의 주장이 오히려 모순됐으며, 박 대통령이 탄핵 되는 것이 진정한 정의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는 학생들의 외침은 마치 송곳 같은 예리함으로 내 가슴에 와 콕 박힌다. 학교의 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은 교장을 향해 또박또박 자신있게 성토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음을 증명하는 멋진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들에게 정의와 진실이라는 올바름에 대해 가르치고, 반면 '꼰대'는 자신의 지극히 사적인 정치적 신념 내지 경험을 강요한다. 자신보다 훨씬 똑똑한 제자들에게 못난 꼰대 역할을 한 이 교장의 행태를 보면서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워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교장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기성세대 중 한 사람일 테니, 이렇듯 비정상적이고 몰상식한 사회를 만들어놓은 책임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꼰대가 아닌, 진정한 스승의 품격을 갖추어야 함이 제자들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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