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직업인으로서의 윤리의식, 왜 중요한가

새 날 2017. 2. 1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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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 받은 해부용 시신(카데바) 앞에서 현직 의사들이 인증샷을 찍어 논란이 일고 있다. 모 대학병원에서 열린 해부 실습 워크샵에 참여한 의사 가운데 5명이 해부용 시신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이를 SNS에 올린 것이다. 공개된 사진에는 시신의 다리 일부가 그대로 노출돼있는 데다가, 의사들은 팔짱을 끼고 있거나 웃는 모습 일색인 터라 보는 이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뿐만 아니다. 이번엔 카데바 실습 중이던 간호대 실습생들이 찍은 것으로 보이는 시신의 일부가 노출된 사진 역시 비슷한 시기에 SNS에 공개됐다.


'카데바'란 사람의 시신을 뜻하나, 의료계에서는 보통 해부 실습용 시신으로 통한다. 의학 교육 및 연구를 위해서는 이 해부용 시신 확보가 필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카데바의 대부분은 의학 교육을 위해 의대 또는 대학병원에 기증되곤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로 무연고자나 기증자의 시신에 의존하다 보니 늘 숫자가 부족한 실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SBS


즉, 카데바는 의학 발전을 바라며 기꺼이 스스로의 몸을 기증한 결과물이다. 그러다 보니 이는 다른 어떠한 경우보다 엄격하게 다뤄진다. 의료인들이 고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대해 예우를 갖춰야 하는 건 다름아닌 이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의대 해부학 교실에는 기증자 추모시설이 마련돼있고, 실습 전 감사의 의미로 묵념을 하는 등 엄숙한 자세로 이에 임하며 일정 수준의 예의를 갖추고 있다. 아울러 카데바 앞에서의 사진 촬영은 연구 목적이 아닌 이상 엄격히 금지돼있으며, 절대로 공유하거나 게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법률로도 명시돼있다. 시체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17조 1항에 따르면 '시체를 해부하거나 시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표본으로 보존하는 사람은 시체를 취급할 때 정중하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돼있다. 


ⓒSBS


하지만 비단 법에 의한 잣대가 아니더라도, 아울러 혹여 의료인이라는 직업적 신분이 아니더라도 카데바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입가에 미소를 띠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연출한, 흡사 시신 기증자 내지 망자를 조롱하는 듯한 이들의 태도는 두고두고 비난 받아 마땅하다. 이는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비윤리적인 행위이자 직업인으로서의 책임을 떠나 최소한의 윤리의식마저도 망각한 파렴치한 행위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카데바는 의학 발전을 위해 기증된 시신인 만큼 이를 다루는 의료인들의 망자를 향한 예의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자 절대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의사를 상징하는 흰색 가운을 처음으로 몸에 걸치게 되는 순간, 누구든 자신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게 된다. 앞서 물의를 일으킨 5명의 현직 의사들 역시 이러한 절차를 밟아왔을 테다. 이는 의업 종사를 허락 받는 조건으로 자기 스스로와 모든 인류에게 약속하는, 의료인이라는 직업인이라면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윤리 지침이자 일종의 바이블에 해당한다. 하지만 근래 의료인으로서의 윤리의식을 내팽개친 사례가 너무 잦다. 


의료계에 몸담고 있는 직업인들은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다루는 업이기에 여타의 직종보다 직업윤리의식이 더욱 강조되고 또 강조된다. 얼마 전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병원 수술실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곁에 두고 생일파티를 하면서 장난을 치는 사진이 SNS에 공개되어 큰 물의를 일으킨 바 있으며, 카데바와 관련한 사건 역시 이번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7년 전에도 대학생들이 카데바로 장난을 치는 사진을 SNS에 공개하면서 논란이 됐던 바다. 당시 해당 학생들은 사과문을 올렸고, 학교는 학교 대로 윤리교육을 더욱 강화하겠노라고 밝혔지만, 이후 수년이 흘렀음에도 그다지 달라진 게 없는 느낌이다. 


ⓒSBS


이와 관련한 후폭풍은 다양한 양태로 발현되고 있다. 의료인들을 향한 시민들의 공분이야 굳이 언급해봤자 입만 아플 테고, 장기기증 서약을 했던 시민들의 취소 신청이 잇따르고 있단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해당 사실이 처음 알려진 7일부터 이틀간 전화 등을 통해 장기기증 서약을 취소하겠다는 신청이 30여 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처럼 서약 취소가 대거 몰린 경우는 이례적인 사안이기에 향후 장기기증 캠페인이나 관련 행사를 진행할 때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단다. 그렇다면 장기기증 취소 러시가 이뤄지는 마당에 가뜩이나 드물던 시신 기증은 더욱 요원한 일 아닐까? 


이러한 결과는 결국 의료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신뢰를 갉아먹고 의료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직업인으로서의 윤리의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일깨우는 사례라 할 만하다.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가 해당 의사들에 대한 징계 검토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더 이상 이와 같은 비윤리적인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한 처벌과 사후 조치를 취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의료인들 스스로 직업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을 당시, 그러니까 히포크라테스 및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던 초심으로 돌아가, 윤리의식을 다잡고 신뢰부터 회복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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