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우상의 몰락과 상실감에 태극기를 들다

새 날 2017. 2. 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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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특히 전철을 이용하다 보면, 노약자석에 앉은 어르신들 가운데 일부가 요즘 젊은이들은 어떻고, 또한 나라는 어떻느니 하며 큰 소리로 성토하는 모습을 간혹 보게된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불콰해진 채 다짜고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반드시 그렇지 만도 않은 것 같다. 이분들의 목소리엔 유난히 힘이 들어가있다. 물론 그럴 만한 속사정이 있다. 


노화로 인해 청각 기능이 저하되어 잘 들리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목소리의 톤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동안 이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불쾌하게 다가왔다면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구나' 하며 이들을 조금은 이해해 보려는 노력도 결코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이도 저도 다 필요 없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경우 이분들 역시 안쓰럽기 짝이없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이에 적응하려 하기보다 결국 실패, 과거의 패러다임에 갇힌 채 안주하려는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뉴스1


근래 자발적으로 광장에 쏟아져나오는 태극기의 다수는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아닐는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이들에게 있어 곧 자신이 치열하게 살아온 시대를 모두 부정 당하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성질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삶에 있어 최고의 전성기는 박정희 개발독재와 산업화시대를 관통해오던 20세기 후반 무렵이었을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박정희로 대변되는 20세기적 향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그들에게 있어 박정희는 우상이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 대통령은 대리만족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국정농단 사태로 그녀가 탄핵의 위기에 몰리고, 박정희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우상처럼 떠받들던 대상이 퇴출 위기에 내몰리자, 마치 자신의 삶 자체가 송두리째 부정 당하는 양 불안감을 느끼며 이를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의 상실감과 위기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건 여러 징후를 통해 드러난다. 우선 헌재의 탄핵 인용이 다가오면서 광장으로 쏟아져나오는 태극기의 수가 급속도로 불어나고 있는 현실을 예로 들 수 있다. 어느덧 태극기의 숫자는 촛불의 그것을 압도한다. 일부 정치인들의 태극기 대열 합류도 그와 관련한 징후다. 특히 이쪽 저쪽 반대 진영을 오가며 극과 극의 철새 행각을 보여온, 한때는 유력 대통령 후보의 물망에까지 올랐던 어떤 정치인의 탄핵 찬성과 반대의 오락가락 갈짓자 행보는 현재의 상황이 극도로 혼란스러우며 민감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울러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반대 진영을 향한 폭력 행사도 잦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엄마부대봉사단 대표의 여학생 폭력과 최근 세월호 리본을 달고 있던 학생을 향한 박사모의 집단 폭력 행사가 단적인 사례다. 이의 기저엔 불안감에 기반한 방어기제가 둥지를 틀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사실 터무니없다. 심정적으로는 동정이 가능하나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애초 도덕성과는 거리가 먼 집단이 바로 현재의 대통령과 그 주변 세력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일당이 벌여온 국정농단이 얼마나 엄중한지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됐고, 현재 특검 수사와 동시에 헌재의 탄핵 인용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은 박 대통령의 행적은 전임 대통령들의 그것과 대동소이하기에 전혀 문제될 소지가 없으며, 통치 행위를 하다 보면 오늘날과 같은 결과는 어쩔 수 없다는 한결 같은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가 급속도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선 애써 모른 척하며, 오로지 자신들의 우상을 살리고 그들의 삶의 방식이 부정 당하지 않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가득 들어차있다. 그러니까 헌법을 유린하고 사적 이익을 취하는 데 권력을 남용해온 중차대한 범죄 행위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니 모두 눈감아줄 의향이 있다는 의미이다. 


계엄령 등 발언 자체만으로도 소름 돋는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는 이들의 뒤로는 20세기적 과거 상황에 안주하면서 당시의 시대상을 다시금 소비하고픈 박정희 등 군사독재시대의 향수에 철저히 갇혀있는 일군의 강퍅한 형상이 어른거린다. 우리나라엔 전두환 같은 사람이 나와 강하게 통치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 방식으로부터 단 한 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한 채 끔찍한 과거에 사로잡혀있는 그들이다. 


ⓒ뉴시스


물질적인 측면으로 보나 사회적인 지위로 보나 이들의 삶에 있어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은 20세기였고, 덕분에 그때의 정치체계나 사회상이 이들에겐 여전히 향수로 남아있다. 어느덧 육신은 노쇠해졌고, 이들의 우상인 박 대통령의 탄핵은 그들 세대 자체와 성과를 부정하는 형태로 인식되는 양상이다. 이들의 불안감과 상실감은 태극기라는 거대한 에너지로 승화되어 광장으로 광장으로 마구 쏟아지고 있다. 우리네 부모를 닮은 이들의 고군분투는 그래서 사실 많이 애잔하다.


태극기 가운데 일부는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돈을 받고 동원된 세력임이 분명하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철새와 다름없는 일부 정치인들이나 돈 몇푼에 영혼을 판 일부 세력에 대해선 언급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다. 때문에 일단 이들은 열외로 하자. 다만, 자발적으로 태극기를 들고 나선, 상실감에 어쩔 줄을 몰라하는 이들의 움직임에 대해선 향후 어떤 방식으로 이를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들의 상실감이나 불안감을, 지금처럼 젊은 세대들의 조롱이나 비아냥만으로 몰아세울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들이 느끼고 있을 법한 감정을 다독이고, 그들이 지닌 에너지를 올바른 방향으로 승화시킬 것인가도 우리 사회가 치열하게 고민해 봐야 할 대목이다. 이들 또한 우리와 함께가야 할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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