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비만율의 격차는 경제력에 기인한다

새 날 2017. 1. 2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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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연구원이 내놓은 '서울시민의 비만 추이와 결정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강남 서초 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의 여성 비만율이 2011년 이래 줄곧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다른 지역과의 격차도 더욱 벌어지고 있단다. 가령 강남구가 7.4%인데 반해 금천과 중랑구는 22.5%로 지역별 편차가 상당히 컸다. 반면 여성과 달리 남성의 경우 지역 간 차이가 비교적 적었으며, 그 격차도 점차 좁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쉽게 떠올려볼 수 있는 건 재정 자립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강남 3구의 경우 공원이나 하천 산책로, 둘레길, 체육시설 등 구민을 위한 편의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져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즉, 이러한 편의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뛰어난 덕분에 시민들이 일상에서 건강을 챙기는 노력이 다른 자치구에 비해 훨씬 수월할 것이라 예상된다. 


ⓒ서울신문


그러나 해당 보고서를 낸 연구원에 따르면 편의시설과 관련하여 유의미한 통계적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고 한다.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지하철역과 가까운 곳에 살면 비만 확률이 낮은 것으로 보고됐다. 이동할 때 버스나 승용차 대신 지하철을 이용함으로써 신체 활동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즉, 교차로가 많고 도로 길이가 길면 도보 접근성이 낮아져 오히려 비만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물론 전혀 일리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집에서 지하철역이 멀 경우 아예 버스나 승용차를 이용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만으로 서울시 자치구별 여성들의 비만율 차이를 설명 가능할까? 도보 접근성을 비만의 이유로 들고 있으니 문득 떠오르는 건데, 도보 접근성이란 결국 부동산 가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도보 접근성이 뛰어난 지역은 상대적으로 집값이 비쌀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도보 접근성이 곧 경제력의 차이라는 사실을 왜 속 시원하게 밝히지 못하는 걸까?


지난 2015년 기준 가구주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비율이 가장 높았던 자치구는 강남구로 51.1%를 기록했다. 반면 가장 낮은 강북구는 그의 절반 가량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난 2014년 일반고 기준 서울대 합격률이 가장 높았던 자치구는 강남구로 2.07%였으며, 가장 낮았던 강북구와 무려 20배의 격차를 보였다. 받아들이기 싫은 불편한 현실일지 모르지만, 학력의 차이가 소득과 경제력의 격차를 빚게 하고, 이는 부의 대물림으로 이어지게 한다. 비만율 역시 이러한 경로를 고스란히 답습해가고 있다. 



강남 3구는 앞서도 언급했듯 서울시에서 재정 자립도가 가장 뛰어난 자치구다. 오늘날 소득 불평등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을수록 건강과 미용에 신경을 더 기울이게 된다는 건 불문가지이다. 심지어 먹는 음식조차 달라진다. 소득이 낮을수록 칼로리가 높은 정크푸드에 접근할 확률이 높다는 통계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빼놓은 채 단순히 도보 접근성만으로 건강과 비만율을 언급할 수는 없다. 


경제력과 건강과의 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가깝다. 단순히 미용 차원이 아니더라도 비만이 건강의 주적임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비만율이 높다는 건 그만큼 건강에 신경을 덜 기울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서울연구원이 지난 2015년에 낸 '한 눈에 보는 서울'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민의 건강상태 만족도는 소득에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득자일수록 자신의 건강에 대해 만족한다고 대답하였으며, 월소득 500만원 이상인 시민들의 만족도가 7.42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월소득 300만원 미만부터 만족도가 평균을 밑돈다. 


ⓒ뉴시스


경제력은 비만과 건강을 넘어 어느덧 수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발간한 '2015 시도별 지역보건취약지역 보고서'에 따르면 사는 지역에 따라 보건의료 수준의 격차가 크게 벌어짐을 알 수 있다. 모든 시군구 지역에서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소득수준이 높은 상위 20%가 소득 하위 20%에 비해 평균 6.1년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분석됐으며, 서울시 서초구 고소득층의 경우 강원도 화천군 저소득층보다 무려 15.2년이나 더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연구원은 서울시 및 각 자치구가 차량 통행을 억제하여 걷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경제적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을 많이 만드는 일 등이 비만율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시민들의 비만율을 낮추고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 데 있어 일정 부분 기여하는 측면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과연 작금의 지역별 비만율 격차를 줄이기 위한 궁극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비만 등 지역별 건강 불평등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오히려 심각한 소득 불평등과 비정규직 등 열악한 노동환경, 아울러 지역간 심화되고 있는 온갖 불평등한 요소로부터 기인하는 게 아닐까? 이러한 부분이 정책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상 단순히 도보 접근성을 높이고 체육시설 몇개 더 만들거나 산책로를 늘린다고 하여 시민들의 지역적인 건강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란 여전히 요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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