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태극기는 무조건 옳은가

새 날 2017. 1. 25.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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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정부 예산 지원 대상에서 배제해온 것도 모자라 이번엔 이른바 자칭 보수라 일컫는 친정부 성향의 단체들을 '화이트리스트'에 포함시켜 지원한 사실이 특검을 통해 밝혀졌다. 최근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으로부터 “청와대가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10여 곳을 찍어 구체적으로 금액까지 못 박아서 지원을 요구했다”는 진술을 특검이 확보했노라는 언론보도가 잇따른 것이다. 


비슷한 정황은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 허현준 국민소통비서실 행정관이 지난 2015년 '한국자유총연맹'에 관제 데모를 지시했다는 사실을 당시 현기환 정무수석이 보고 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물론 아직 구체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것도 아니지만, 이는 그동안 이들 단체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뒷배가 있을 것이라는 세간의 무수한 예측이 결코 억측이 아님을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사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이 엄중하게 와닿는 건 국민의 세금이 파렴치한 이들 행위의 대가로 흘러들어갔으리라는 정황 때문이다.


ⓒ헤럴드경제


그동안 이들이 우리 사회에 남겨놓은 족적은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저열하다. 세월호를 비롯하여 최근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까지, 사회적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이라면 빠짐없이 개입, 이념 몰이를 통해 조직적인 반대 활동을 펼쳐온 그들이다. 이들의 행동 양식은 한결 같다. 다시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치졸하기 짝이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그토록 떳떳하게 행동해올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러한 권력의 비호 덕분이었던 셈이다. 비정상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리고,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근래 이들 단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저지하기 위한 단일대오를 형성하였으며, 촛불에 맞서 광장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회 인원이 늘고 있는 걸로 봐선 마지막 남은 역량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양새다. 이들은 하나 같이 '애국자'임을 자처하는 양 태극기를 들고 있다. 집회를 이끄는 차량에서는 군가가 흘러나오며 군인들이 나서서 촛불을 든 시민들을 모두 총으로 쏴 죽여야 한다거나 쿠데타를 일으켜야 한다는 등의 섬뜩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최근 내란선동과 명예훼손 혐의로 이들이 검찰에 고발된 상태이긴 하나, 이렇듯 시대착오적이며 끔찍한 발언을, 그것도 백주대낮에 대로에서 아주 떳떳하게 일삼을 수 있었던 건 다름아닌 앞서 언급한 정황처럼 권력이 이들의 뒤를 봐주는 든든한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엄마부대봉사단'이며 '어버이연합'이라는 단체명과는 전혀 부합하지 못하는, 나이로 볼 땐 분명히 우리네의 어머니이며 어버이임이 분명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나잇값 못하는 파렴치한 행위 덕분에 '엄마'와 '어버이'라는 애틋한 의미의 명사가 그 이름과는 전혀 걸맞지 않은 방향으로 훼손되고 더럽혀져온 현상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해야만 했다. 


이들이 이젠 태극기를 든 채 광장에 모여 자신들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주장한다. 나는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엄마라는 이름을 갖다붙인다고 하여 모두가 엄마가 될 수 없듯, 아울러 어버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고 하여 모두가 어버이로 받아들여질 수 없듯, 과연 태극기를 들고 있다고 하여 진정한 애국자이며,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연합뉴스


집회가 끝난 뒤 그들의 주변을 한 번 돌아보자. 태극기를 길에 버리거나 훼손시킨 채 나뒹굴도록 방치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목격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재임 중 애국심을 어느 누구보다 강조해온 사람이다. 실제로 국민의례 등을 통해 보여온 그녀의 행동엔 유난히 각이 잡혀있는 뉘앙스다. 현행 국기법 10조는 국기가 훼손되면 지체 없이 소각 등 적절한 방법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집회에서 사용할 때는 행사 주최 측이 국기가 함부로 버려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물론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러한 형식적인 애국심을 언급하려는 게 아니다.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의 애국심이야말로 앞서 언급한 형태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왜냐하면 입으로는 그토록 애국심을 떠벌려왔으면서도 정작 뒤에서는 위임된 권력을 이용하여 사적인 이익을 취하며 나라를 엄청난 혼란과 도탄 속으로 몰아넣고, 헌법에 반하는 불법적인 방식으로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 혈세를 엉뚱한 곳에 전용하여 왔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광장의 태극기는 과연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태극기는 무조건 옳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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