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야생 성향이 강한 말라뮤트만의 독특한 소통법

새 날 2017. 1. 20. 13:14
반응형

나의 서식지엔 일찌감치 예비대설특보가 내려진 상황이다. 하지만 한밤중임에도 눈은 내리지 않고 있었다. 결국 모두가 포근히 잠든 사이 살포시 내릴 것 같은 예감이다. 


우리집 개 미르는 평소 달빛과 별빛을 이불 삼아 지내왔다. 그러나 적어도 눈 비가 올 때만큼은 이를 피해야 하니, 자유롭게 풀어놓아야 할 상황이다. 녀석의 집 문을 여는 순간,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기던 미르는 슬쩍 자기 콧등을 내 손에 대고선 이내 손등을 핥는 게 아닌가. 


녀석의 행동은 아주 조심스러웠고, 그 때문인지 수줍음 따위가 전해져온다. 이러한 행위의 이면엔 녀석의 나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녀석은 아무런 말을 않는다. 아니 못한다. 심지어 다른 종의 개들처럼 짖지도 않는다. 그저 그 깊고 커다란 눈망울의 꿈벅거림과 이러한 수줍은 행위를 통해 녀석의 애정을 감지할 뿐.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여느 때보다 일찍 눈을 뜨게 된 아침이다. 기상예보대로 밖엔 눈이 제법 쌓였다. 그런데 새벽 즈음인가 찹쌀떡을 사라며 외치던 목청 좋은 아저씨의 외침이 미르의 잠자던 하울링 본성을 본격 깨우고 말았다. 늑대가 우는 것도 아닌, 그 기묘한 소리 덕분에 잠이 깬 이후로 한동안 난 다시 잠이 들지 못했다. 동네분들께도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친 결과가 돼버렸다.



어쨌든 또 다시 아침은 밝아왔고, 밖으로 나와 보니 녀석은 아주 신이 난 모양새다. 온 세상이 하얗게 쌓인 눈 천지 때문일까? 얼마나 좋았으면 아주 눈밭에서 데굴데굴 뒹굴기까지 한다.



녀석의 나이는 올해로 8살이다.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접어드는 시기이다. 



새하얀 눈 때문인지 오늘따라 녀석의 자태가 극적으로 대비된다. 좀 씻겨야 하는데 계절적으로, 그리고 여건상 이게 참 쉽지 않은 노릇이다.





눈밭에 누워 눈을 먹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나이가 제법 들었음에도 여전히 개구지다. 개들에게 있어 눈은 여러모로 즐거운 존재인 모양이다.



본능에 충실한 녀석의 움직임으로부터는 아주 간혹 맹수의 흔적이 엿보인다.



최근 녀석은 내게 어깃장을 자주 놓는 편이다. 이쪽으로 가자고 하면 반대쪽으로 가서 주저앉은 채 꿈쩍 않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간혹 기싸움을 벌여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런 녀석이 수줍게 다가와 자기의 코끝을 내 손등에 대고 혀로 슬쩍 핥는 건 여전히 나에 대한 애정이 깊으며 복종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아침에 현관문을 열자마자 녀석은 벌떡 일어서더니 눈밭을 뛰어다니느라 흠뻑 젖은 그 큰 두 앞발을 내 가슴 위에 떡하니 올려놓으며 반가움을 표시해온다. 난 짐짓 당황스러웠지만, 녀석만의 이 독특한 소통법을 존중해주고 싶다. 이는 코와 입을 손등에 슬쩍 대거나 혀로 핥는 표현과 더불어 녀석과의 교감을 나누거나 애정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식일 수 있으니 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