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매혹적인 열정과 감성이 주는 행복감 '라라랜드'

새 날 2016. 12. 11. 14:37
반응형

배우 지망생인 미아(엠마 스톤)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처지이지만, 오늘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회 초년생이다. 하지만 그녀의 이러한 노력은 번번이 물거품이 되곤 했다. 그날도 여지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해 줄 귀인을 만나겠노라는 일념 하나로 친구들과 함께 파티에 참석한 그녀다. 파티는 무르익어 갔지만 정작 그녀가 찾는 귀인은 없었고, 하필이면 도로 위에 세워 놓은 자동차는 주차금지구역 상에 위치했던 터라 견인 조치되고 만다. 너무 늦은 시각, 어찌해볼 도리가 없던 미아는 터벅터벅 길을 걷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한 레스토랑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녀의 귀를 홀린 음악 소리는 다름아닌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라는 청년이 연주하는 곡이었고, 그는 때마침 이 곡을 끝으로 레스토랑 사장(J.K. 시몬스)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게 된다. 주섬주섬 주변을 정리하고 레스토랑을 빠져나오던 세바스찬에게 미아는 멋진 음악 잘 감상했노라며 자신의 의중을 전달하지만 그는 들은 척도 않은 채 그녀와 어깨를 부딪히고선 아무런 반응 없이 유유히 사라진다. 미아는 짐짓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겸연쩍어 했으나, 두 사람의 운명은 이렇게 시작된다.


세바스찬은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학도 출신으로서 재즈 장르에 심취, 이의 전통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언젠가는 재즈 전문 클럽을 열어 이를 부흥시키겠노라는 야심찬 꿈을 안고 사는 청년이다. 미아와 세바스찬, 이들이 지닌 공통분모는, 지금의 삶은 비록 보잘 것 없어도, 아울러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미래 역시 한없이 불투명해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멋진 도시 LA에서 각기 꿈을 좇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일군의 청춘들이라는 사실이다.



LA의 도로 한복판 위로 길게 정체된 차량들 틈 사이에서 벌어지는 멋진 군무로 이 영화는 시작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네 개의 계절로 챕터가 각기 나뉘어져 있다는 점이 특징이며, 미아와 세바스찬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열정이, 비록 도중 몇 차례의 좌초 위기를 맞이하는 등 일련의 시련이 찾아오긴 해도, 때로는 클래식한 느낌의 영상미와 세련된 감각의 화면이 스크린 위를 오가며 흡사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기라도 한 양 관객들의 감정을 쥐락펴락 하는 마법으로 변신,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피아노 건반 위를 부드럽게 스치는 세바스찬의 손놀림은 청각을 자극하는 선율로 변모, 어느새 귓가를 파고들며 그 자체로 황홀경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세바스찬과의 인연을 상징하는 곡이자 미아의 테마곡이기도 한, 레스토랑에서의 첫 만남의 순간 그가 연주했던 곡은 처음 들었을 당시의 설레게 했던 감정과, 극이 어느덧 후반부에 이르렀을 때의 아련한 감정이 한데 뒤섞이며 아스라하면서도 안타까운 여운을 남긴다. 내가 놀랐던 건 세바스찬 역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의 피아노 연주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를 위해 수개월 동안 피아노에만 매달린 채 대역 없이 실제로 그가 연주했노라는 후문이다.



미아는 우울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청년들을 빼닮았다. 오디션이라고 하여 열심히 자신의 끼를 발산해 보지만, 정작 이를 유심히 관찰해야 할 면접관들은 딴청을 부리거나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때로는 졸립기라도 한 양 형식적으로 응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미아는 셀 수조차 없이 많은 좌절감과 자괴감을 맛보며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 즉 꿈꾸는 방향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심각한 수준의 의문을 갖게 된다. 세바스찬이라고 하여 별반 다르지 않다. 재즈를 향한 열정과 열망이 가득하지만, 정작 그의 연인인 미아조차 재즈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데다가, 일반인들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대중적인 장르가 아닌 까닭에 그의 꿈은 다소 고지식하며 무모해 보인다.



그러나 각기 방향은 다르지만, 스스로의 꿈을 좇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인연은 단순히 남과 여라는 이성의 조합을 넘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서로가 서로에게 열정을 자극시키는 훌륭한 파트너가 되게 한다. 그들이 좇는 꿈을 관객들이 뒤쫓는 과정은, 때로는 안타깝고 힘에 겨울 때도 있지만, 감독이 선보이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놀라운 마법 덕분에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키며 오히려 황홀한 감정으로 다가오게 한다. 때문에 이 화려한 색감의 영상과 귀를 자극해 오는 멋진 음율 그리고 스크린 가득 그려지는 열정과 꿈 따위의 모든 감성들을 오로지 텍스트 하나로 표현하기에는 제법 무리가 따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해가 저물어가는 LA의 공원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이 선보인 춤과 노래는 장면 하나 하나와 색감이 너무 예뻐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아주 멋진 신 중 하나다. 그리피스 공원 천문대에서 꿈을 꾸듯 그려내는 두 사람의 무대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에 절로 빠져들게 하고, 미아가 꿈에 도달하기 위해 마지막 관문에서 펼치는 독백과도 같은 노래는 우리의 잠든 영혼과 열정을 깨우고도 남을 만큼 호소력이 짙다. 엠마 스톤의 매력이 유감 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그녀 역시 라이언 고슬링처럼 이 역할을 위해 오랜 시간을 준비했다고 하니 제73회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이 충분히 납득되는 순간이다. 



영화 '위플래쉬'에서 독한 선생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J.K. 시몬스'가 우정 출연, 당시의 이미지를 다시금 선보인 대목은 다소 익살스러웠고, R&B 싱어송라이터로 알려진 '존 레전드'가 극 중 세바스찬의 친구인 '키이스'로 분한 채 그의 대표곡인 ‘Start a fire’를 들려 주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카랑카랑하면서도 탁 트인 그의 목소리는 호소력이 짙어 흡사 해당 무대의 객석에 직접 앉은 듯한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영화 '위플래쉬'의 전반을 흐르던 재즈와 유사한 풍의 곡들이 이번 작품에도 여전히 관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같은 감독의 DNA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는 점도 이 작품만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꿈을 좇는 두 청춘의 고군분투와 아련한 사랑 이야기를 화려한 색감의 아름다운 영상과 황홀할 정도로 멋진 음악 그리고 열정 가득한 감성으로 버무린, 정말 이 시대 최고의 작품 하나가 탄생한 듯싶다. 영화가 끝나고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을 정도로, 아울러 상영 내내 흘러나오던 곡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 정도로, 짙은 여운이 남는다. 텍스트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매력적인 감성과 마법을 닮은 황홀함으로 우리를 이끌며 무한 행복감을 선사해 주는, 강력하게 추천하고픈 영화다. 



감독  다미엔 차젤레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