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자전거 운전자가 왜 '자라니'로 불려야 하나요

새 날 2016. 11. 1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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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대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천만 대를 넘어 주요한 교통 레저 수단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셈인데요.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자전거 대수는 지난해 기준 1022만 대로 조사됐으며, 올해엔 120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5년 전과 비교해 보면 약 400만 대나 늘어난 수치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자전거는 법상 차량으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관련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까닭에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가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근래 자전거와 관련하여 대중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신조어 하나가 있습니다. 다름아닌 '자라니'입니다. 이는 '자전거'와 '고라니'의 합성어인데요. 뜬금없이 왜 이러한 표현이 등장하게 된 걸까요? 차량 운전자들에게 있어 고라니는 위협적인 동물입니다. 갑자기 차도로 뛰쳐나오는 바람에 이를 피하려고 하다 사고를 유발, 최악의 경우 운전자가 생명을 잃거나 위협을 느끼게 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고라니 스스로 로드킬의 대상이 되기 십상인 까닭입니다. 결국 '자라니'는 천방지축 뛰어다니다가 언제 어디서 갑자기 출몰할지 모르는 고라니를 자전거 운전자에 빗댄, 일종의 비하성 혹은 혐오성 표현인 셈입니다. 


ⓒ연합뉴스


물론 도로 위에서의 일부 자전거족의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태는 '자라니'로 불린다 해도 딱히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도로교통법상 엄연히 차량으로 분류되는 자전거입니다만, 운전자들의 입맛에 따라 그때그때 그 기준을 달리 적용하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한 차선 전체를 장악한 채 통행하다가도 길이 막히거나 하면 중앙선 침범 따위를 우습게 행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울러 교통신호를 무시하는 건 다반사에 심지어 역주행을 일삼는 이들도 볼 수 있습니다. 차도와 인도를 오가며 곡예 운전을 하는 운전자들도 흔합니다. 사실 차량 운전자가 아닌, 보행자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아찔한 상황을 수없이 접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자전거는 어떤 방식으로 운행해야 올바른 방법일까요?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자전거를 타고 인도나 횡단보도로 다니는 것은 엄연히 불법 행위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 자전거는 차량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도나 횡단보도를 이용할 때는 반드시 자전거에서 내려와 이를 끌고 걸어서 이동해야 합니다. 아울러 자전거 전용도로가 갖춰져 있지 않은 곳에서는 차로를 이용할 수 있으나, 이때는 도로 우측 가장자리에 붙어서 운행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일부 자전거족들이 '자라니'로 불리는 데엔 사실 그들 스스로 그에 걸맞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셈입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전거족들의 의식 전환은 물론이거니와 현실에서의 법규 준수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일부 몰지각한 자전거 운전자들 때문에 모든 자전거 운전자들까지 도매금으로 취급되는 현상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비단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뿐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응당 모든 영역에서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고 이를 무시하는 이들이 일정 비율 있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차량 흐름 위주의 차도에서 자전거가 돌출 행동을 보인다면 유독 눈에 띌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모든 자전거족들을 '자라니'라 부르기에 앞서 왜 그토록 많은 자전거들이 교통사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차도 위로 나설 수밖에 없는가를 고민해 봐야 하는 게 우선 순위 아닐까 싶습니다. 


경찰청의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자전거 교통사고는 전체 교통사고 중 8.16%에 이를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건 자전거 교통사고가 2012년 1만3천252건, 2013년 1만3천852건, 2014년 1만7천471건 등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법의 보호를 받으며 제대로 달리고 싶어도 그럴 만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까닭에 그 수가 대거 늘어난 자전거족들이 차도로 몰릴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일정 비율에 이르는 불법 행위자들이 상대적으로 눈에 많이 띄게 되어 오늘날과 같은 결과가 빚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거주하는 지자체만 하더라도 자전거 전용도로는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는 데다가 그나마도 차도의 가장 바깥 차선을 일부 할애, 자전거도로를 만들어 놓은 곳이 있긴 하나 불법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거의 무용지물이기 일쑤입니다. 십수 년이 지나도 이러한 관행이 변하지 않는 걸로 봐선 지자체에서 이를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자전거는 자전거도로가 없을 경우 어쩔 수 없이 차도 위를 달려야 합니다. 달리는 차량이 무서워 대부분의 자전거들이 인도 위를 달리고 있습니다만, 이 또한 불법 행위입니다. 


ⓒ헤럴드경제


우리의 도로 여건상 자동차 운전자들은 자전거를 절대로 동급의 차량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위협 운전은 기본이고 무시는 옵션인 까닭에 자전거 운전자들은 차도 위에서 본의 아니게 목숨을 건 랠리를 해야 할 판국입니다. 이런 처지에서 누구인들 차도 위를 달리고 싶어 달릴까요? 최근 서울시 공공자전거인 '따릉이'가 곳곳에 설치되고 있습니다. 한 시간에 천 원인 비교적 저렴한 이용가격 덕분에 많은 시민들이 이를 이용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자전거도로 등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듯 자전거 대수만 자꾸 늘리는 건 가뜩이나 점증하는 자전거 교통사고율을 높이는 데 일조할 개연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시민 안전이 철저하게 도외시되는 상황, 인도를 주행해서도 안 된다 하고 차도에서는 차량 운전자들에 의해 위협 당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끔찍한 처지, 과연 대한민국 그 어느 곳에서 자전거를 마음 놓고 탈 수 있을까요? 자전거 전용도로 등 자전거를 위한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다면 지금처럼 불법적인 주행이 만연했을까요? 정작 자전거 운전자들을 작금의 '자라니'로 내몰고 있는 건 바로 행정 당국이 아닐까요? 종국엔 시민들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서로가 서로를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촌극을 벌이고 있는 셈 아닐까요? 자전거 운전자가 왜 '자라니'로 불려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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