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노무현, 그가 남긴 소중한 자산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새 날 2016. 11. 15.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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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과 함께 유신헌법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을 주도하는 등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에 헌신해 온 김희로 시인의 둘째 아들 김원명 작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하나 둘 찾아나서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이 영화의 각본과 나레이션을 맡았다. 노무현을 기억하는 사람 수 명이 포장마차에서, 혹은 팟캐스트 녹음실에서 소줏잔을 기울이며 허심탄회하게 과거를 되짚는다. 


이들이 과거를 떠올리며 북받쳐오르는 설움과 안타까움에 그만 눈물을 훔치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장면은 관객들마저 숙연케 한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길래 그의 부재가 이토록 사무치게 다가오는 걸까? 다큐멘터리 장르의 이 영화가 관객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 과연 무얼까? 



노무현 대통령의 과거 활동 영상은 그동안 인터넷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이번 작품에서 선보인 영상 중 일부 역시 언젠가 접한 기억이 있는 것들이다. 다만 파편화돼 있던 관련 기록들을 이렇듯 '16대 총선' 혹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카테고리 안에 가지런히 한데 모아놓은 상태에서 이를 한꺼번에 볼 수 있게 한 점만으로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아울러 이러한 영상을 처음 접하는 분들껜 그분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다가올 듯싶다. 



영화 속에서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느낌은 흡사 차돌과도 같은 단단함과 우직함이었다. 적어도 영상속 그의 모습은 어떠한 외풍이나 유혹에도 절대로 흔들림 없이 꿈쩍도 않을 듯 매우 강인한 사람이었다. 외유내강이 아닌, 외강내강이라는 표현이 그에겐 딱일 듯싶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인간미가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의 소탈하면서도 서민적인 삶의 방식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익히 알려진 바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러한 측면을 일부러 배제시킨 듯싶으나 사람의 타고난 성품은 굳이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해도 완전히 가려질 순 없는 법이다. 영상 곳곳에서 그의 따뜻하면서도 소박한 면면이 드러난다. 



상영 시간의 대부분은 오로지 지역구도를 깨겠노라는 일념 하나로 지난 16대 총선에서 서울을 박찬 채 부산 북강서을에 과감히 출사표를 던지고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도전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적인 고군분투기에 할애돼 있다. 지역감정은 케케묵은 우리 사회의 병폐 중 하나다. 노무현 후보는 지도자가 되고 싶은 욕심이 대단했던 인물이다. 당시 호남 기반인 '새천년민주당' 입장에서는 사지와 다름없었던, 때문에 모두가 만류했던 부산 지역에 그가 직접 뛰어들었던 건 바로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선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없음을 의미하는 데다가 대한민국 사회의 미래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절박한 심경에서 비롯된 바 크다. 



2000년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연 해였으나 대한민국의 해묵은 지역감정은 그다지 변한 게 없었다. 아니 예상보다 훨씬 견고했다. 더구나 노무현 후보와 대척점에 놓인 정당 후보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여전히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등 그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암울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지는 한결 같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차기 지도자는 결국 망국병인 지역주의의 벽을 허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호기를 부렸다. 물론 이러한 호기가 결과적으로 그를 이 땅의 지도자로 탄생시킨 셈이지만 말이다.



영화는 노무현 대통령의 확고한 신념인 지역주의 타파를 크게 두 축으로 나눠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부산에 출사표를 던진 노무현 후보의 16대 총선 이야기가 주요 축이라면,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뒤인 2016년 20대 총선에서 여수 지역에 출사표를 던진 '더불어민주당' 백무현 후보의 국회의원 도전기는 또 다른 축이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와 영국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작가는 프랑스와 영국의 상이한 정치적 상황을 비교하면서도, 두 상반된 공간 속 개인의 삶이 얼마나 유사한가를 정갈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두 도시 이야기'가 이번 작품의 모티브가 될 수 있었던 건 각기 영남과 호남을 대표하는 부산 및 여수라는 두 도시의 상이한 공간 그리고 두 '무현'의 지역주의 해소라는 비슷한 고군분투기가 그려졌다는 유사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해 왔고 그래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백무현 후보는 자칭 타칭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 인물이다. 호남 민심이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완전히 떠나 '국민의당'으로 향할 즈음 그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왔던 길처럼 우직하게 '더불어민주당'의 이름으로 20대 총선을 끝까지 완주한다. 물론 과거의 노무현이 그랬듯 그 역시 쓰라린 패배를 경험해야 했다. 더욱 안타까운 건 어느날 그에게 불쑥 찾아온 치명적인 병마였다. 



선거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백무현 후보의 따님이 지원 유세에 나선다. 아버지를 도와달라는 간곡한 그녀의 목소리엔 숙연함 같은 게 깃들어 있었다. 두 '무현'은 닮은 듯 사뭇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6대 총선에서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서울시 종로구의 공천을 마다하고 오로지 지역주의의 벽을 넘겠노라는 당찬 포부와 의지만으로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 출마한다. 물론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만다. 이러한 방식의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노무현 대통령에겐 가까운 훗날 훌륭한 정치적 자산이 되어 그를 대한민국의 지도자로 우뚝 서게 하지만, 안타깝게도 백무현 후보에겐 이번 선거가 정치활동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바보 노무현이 우리 사회에 남긴 족적은 너무도 뚜렷하여 백무현 후보와 같은 또 다른 '무현'을 자꾸만 낳으며, 이들을 통해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이어가게 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 20대 총선에서는 아주 조심스럽지만, 어쨌든 지역구도의 균열 조짐마저 읽힌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에게 남긴 소중한 자산은 다름아닌 이러한 것들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또 다른 '무현'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등 무모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뤄지리라 믿는다. 


국가 지도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와닿는 요즘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남긴 울림은 그래서 더욱 크고, 가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감독  전인환


* 이미지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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