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비선 실세 국정 개입 파문이 우리 사회에 남긴 상처

새 날 2016. 10. 2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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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이 요동을 치고 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비선 실세 국정 개입 파문은 대통령의 지지율을 10%대로 주저앉히며 온 나라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인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넘어 참담할 지경이다. 탄핵해야 한다거나 하야하라는 목소리가 점차 비등해지고 있다. 모 기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40%가 넘는 응답자가 그와 같이 답하고 있으며, 각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앞다퉈 시국선언을 발표, 정치권의 책임감 있는 행동을 요구하고 나섰다. 


물론 충분히 납득이 될 법한 상황이다. 설마 하며 반신반의했던 우려가 말도 되지 않는 현실로 속속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명분상 아직 국가 수장으로서의 직위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대통령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어떠한 말이나 행동을 하건 이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올곧게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소문은 그동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러한 소문이 일부 사실로 드러나게 됐고, 그와 얽힌 무수한 정황들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서울신문


이러한 결과가 있기까지 대통령 본인은 물론, 최순실이라는 인물의 잘못과 책임이 가장 크다. 하지만 정작 판이 이렇게까지 커지도록 방관하거나 조장한 새누리당의 책임이 난 더 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랜 기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등의 당적을 유지해 왔던 박근혜 대통령을 지척에서 겪으며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그들이 과연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알려진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을 과연 몰랐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에 하나 정말로 몰랐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문제가 될 법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과거 대선시절 박근혜 대통령과의 경선 과정에서 현재 불거진 의혹들을 언급하며 그녀가 대통령이 절대로 되어선 안 된다고 못박은 바 있다. 벌써 10년 가까이 된 이야기다. 만에 하나 대통령이 된다면 환관정치가 될 것이라는 소문도 파다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새누리당 당내에서는 이 모든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국회의원들, 특히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의 면면을 한번 살펴보라. 정말로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죄다 모여 있는 집단이 다름아닌 그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작금의 상황을 모를 리가 만무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도 정략적인 이유 때문에, 혹은 다른 이유로, 그녀를 대통령이 되도록 일부러 띄우거나 심지어 떠받들어 온 셈이 되니, 그들은 오늘날의 결과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한 마디로 이 새누리당 사람들이 그동안 국민을 철저히 우롱해 온 셈이 된다. 그렇다면 이번 파문은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기고 있을까? 무엇보다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는 사실이 가장 뼈아프다. 국가 지도자로서 몸소 신뢰를 실천해도 시원찮을 판에 국민들의 믿음을 깡그리 내차버린 셈이니 말이다. 물론 현재 시중에서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들 대부분은 아직 팩트가 아닌 정황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통령 자신이 발빠르게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는 건 대부분의 의혹이 사실일 것이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집권해 온 지난 3년 여간의 행적 모두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국민들의 의사에 반했던 역대급 행적들을 두고두고 곱씹게 된다. 가령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우주의 기운"이나 "혼이 비정상"과 같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잘 쓰이지 않을 법한 어휘는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한 여지가 있다. 비선 실세가 국정에 개입한 상황에서 이뤄진 국가간 조약이나 각종 계약들은 과연 효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수히 내놓은 정책들은 또한 어떠한가? 모든 게 의심스럽지 않은가? 신뢰란 이렇듯 중요한 명제다. 게다가 국가 지도자로서의 신뢰란, 일반인이나 여타 조직의 그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사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하기 이전부터 원칙과 신뢰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던 사람이다. 물론 재임 기간 동안 자신의 공약과는 따로 노는 놀라운 결과를 바라보면서 대부분의 원칙과 신뢰가 무너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그보다 훨씬 심각하다. 대통령선거에서 국민들이 표를 몰아 주었다는 건 다름아닌 신뢰를 보내노라는 의미이다. 대통령으로서 예측 가능한 행동을 하리라 짐작하고 기꺼이 한 표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뒤집는, 아니 뿌리째 뽑아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의혹이 불거졌다. 일말의 신뢰마저 무너지며 국민들은 집단 패닉상태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신뢰란 모름지기 예측 가능성이 높아 응당 이렇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당위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 정도의 예측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우리 사회에 아로새긴 상처는 다름아닌 이 예측 가능성을 바닥으로 완전히 내차버렸다는 점이다. 덕분에 우리 사회는 현재 미증유의 혼란 상태에 빠져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경제 여건 등 대한민국이 현재 바람 앞의 촛불과 같다는 사실이다.


ⓒ국민일보


당장 개헌을 하자던 주장은 결국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한 국면 전환용 떡밥이라는 사실에 무게가 실린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하면서도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이 이를 먼저 꺼내들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이를 도저히 정상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모두 대통령과 새누리당 스스로가 자초한 셈이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나 하야와 관련한 주장이 봇물을 이루고 있으나,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놓인 국가적 위기 상황 앞에서 과연 해당 결과가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해선 곰곰이 따져 봐야 한다.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국익이라는 냉철한 잣대를 앞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마저도 정치적인 이익을 앞세우거나 정략적인 도구로 전락시켜서는 절대로 안 될 노릇이다. 현재의 대통령은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하기가 어렵게 됐다. 스스로가 무너뜨린 신뢰 때문이다. 이보다 더욱 안타까운 건 우리 사회 전반에 신뢰 붕괴라는 몹쓸 바이러스를 전염시켰다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거국적인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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