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무엇이 이 아이를 자력구제로 내몰았나

새 날 2016. 9. 28.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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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 하나가 흉기에 찔렸다. 가해자는 같은 반 친구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놀라게 한 건 방과후가 아닌 2교시 수업 직후, 그것도 교내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버젓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알고 보니 학교폭력과 연루된 사안이었다. 가해학생은 평소 피해학생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해 왔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이날도 가해학생은 피해학생에게 불려나가 폭행을 당했고, 참다 못한 가해학생이 결국 흉기를 휘두르고 만다. 


언뜻 보기엔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학생의 단순 보복 행위 같지만, 이번 사건을 복기해 보면 자살을 하는 사람이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또한 그와 관련한 신호를 남겨 놓듯, 가해학생 역시 피해학생으로부터의 폭력과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무수한 몸부림과 저항의 신호를 주변에 남기며 도움을 요청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학교도, 사회도, 어느 누구조차도, 그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 셈이 돼버렸다.


YTN 방송화면 캡쳐


또래와의 관계가 인간관계의 거의 전부이다시피 하고, 또한 학교 등의 공간에서 이들과 거의 하루종일을 대면하며 함께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있어 따돌림이나 괴롭힘과 같은 요소는 심리적인 압박감을 동반함은 물론이거니와 물리적인 고통을 수반한다. 짐작컨대 가해자의 바람은 너무도 간절했으리라. 사건이 있던 그날도 가해학생은 1교시에 담임교사를 찾아가 피해학생의 상습적인 폭행을 호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니까 가해학생은 마지막 심정으로 학교라는 울타리에 의존하며, 자신을 보호해 주었으면 하는 간곡한 바람을 내비쳤던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학교는 학생을 보호해 주는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 했다. 피해학생을 학교폭력 자치위원회에 회부하기로 결정하였으면서도 가해학생이 호소해 온 도움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그를 보호하기 위한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해학생은 1교시가 끝나자마자 교실에서 피해학생으로부터 머리와 뺨을 수차례 얻어 맞았고, 2교시가 끝난 직후에는 화장실로 끌려가 또 다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이러한 가혹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해 하며 고통스러워 하던 아이는 자연스레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겠다는 본능에 이끌린 채 결국 흉기를 휘두르고 만다.



사전에 얼마든 예방이 가능했던 사안이라 안타까움은 더욱 크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비단 이번 사안이 아니더라도 전국의 수많은 일선 학교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을 학교폭력과 관련하여 건수 위주의 성과주의로 흐르거나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 말이다. 그러니까 피상적으로는 누구나 손쉽게 신고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놓은 채 접근성을 높여 놓은 듯싶으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여전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게 아닌, 어른들의 눈높이에 맞춘 채 다분히 형식적인 학교폭력위원회를 개최, 섣부르며 어설픈 사과 형태로 대부분 마무리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 아닌 염려가 앞선다는 의미이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학교알리미의 공시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학교폭력이 2013년 이래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나 교육부는 의도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통계만을 발표하며 되레 5년 연속 학교폭력이 감소하고 있음을 애써 강조하고 있단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교육부는 초중고 학생 전수조사에서 한 번이라도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한 학생이 2013년 9만4000명에서 올해 3만9000명으로 급감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학교폭력 심의건수는 되레 2013학년 1만7749건에서 2014학년 1만9521건, 2015학년 1만9968건으로 같은 기간 2219건이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 결과를 두고서도 이렇듯 해석이 제각기 다르다는 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학교폭력은 이번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온 4대악 척결 과제 중 하나에 해당한다. 결국 성과주의에서 비롯된 숫자놀음 정황이 의심스럽다는 의미이다. 교육부마저 이럴진대 일선 학교는 오죽할까 싶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은 예견된 참사다. 이로 인해 학부모들은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을 안게 됐다. 바로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 여겨졌던 학교 울타리마저 이제는 믿을 수 없게 돼버렸다는 사실이다. 학교에 대한 신뢰가 와르르 무너져내린 셈이다. 


ⓒ뉴시스


아이들이라고 하여 다를까?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학교가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본능에 충실하게 된다. 물론 이유 불문하고 폭력은 옳지 못 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아무도 스스로를 지켜 주지 않아 각자도생의 시대로 가고 있듯, 아이들 역시 아무리 고통을 호소하고 괴롭다며 소리를 질러 보아도 흡사 허공에다 대고 외치는 것과 같이 이를 외면 당하기 일쑤이다. 생존과 안전을 갈구하는 건 본능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이성으로 호소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결국 철저하게 본능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 학생을 자력구제의 상황으로 내몬 건 무얼까? 학교와 사회,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아닐까? 아울러 왠지 이번 사건을 빌미로 일선 학교에서는 한동안 소지품 검사를 벌이는 등 피상적인 대책으로 일관하며 허둥지둥거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데, 제발 이런 짓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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