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사회에 만연한 불신, 누가 어떻게 키우나

새 날 2016. 9. 2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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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여당 대표가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야당이 아닌 여당 의원이, 그것도 당 대표가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한 노릇이 아닐 수 없으며, 무언가 격세지감으로 와닿는다. 그러나 20대 국회가 여소야대의 형태라는 인식에 문득 머무는 순간, 뭐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불과 2년 전에 남긴 어록이 새삼 화제다. 과거 국회의원들의 단식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장본인이 다름아닌 그였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2014년 10월 31일 열린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그는 선거제도가 정착된 나라들 중에서 단식투쟁을 하는 국회의원이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라며, 바로 이로부터 국회의원의 특권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현재 자신이 벌이고 있는 단식 농성이 바로 그 특권 행위라는 의미인데, 스스로가 돌아 봐도 참 무안한 지경이 아닐까 싶다. 


ⓒ연합뉴스


집권 여당의 당 대표가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 뒤집은 채 아예 대놓고 특권 행위를 일삼는 곳이 다름아닌 대한민국 사회다. 그러다 보니 신뢰라는 단어의 원래 쓰임새는 이들 앞에서 무색해지기 일쑤이다. 우리 사회가 신뢰를 잃어가고 있음은 여러 징후를 통해 드러난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인사채용 감사 결과 신입사원 채용과정에서 합격자 순위를 조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이를 “관례”라고 해명했다. 도대체 이러한 사례가 얼마나 비일비재하면 관례라는 용어가 서슴없이 튀어나올 수 있는 건지 놀랍기 짝이없다.


그러니까 지극히 공정해야 마땅할 신입사원 채용 전형 과정에서 불공정한 행위가 판을 치고 있고, 수많은 청년들의 꿈을 꺾은 행위가 이른바 관례라는 이름으로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노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물론 채용 비리는 비단 이곳 만의 문제는 아닐 테다. 실제로 가스안전공사 외 점검대상에 포함된 17개 공공기관 전체에서 다양한 채용 비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취업을 하지 못해 신음하고 있을 이땅의 청년들 얼굴 보기가 민망해지는 순간이다.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준비하고 스펙을 쌓아온 건 다름아닌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고, 또한 오롯이 객관적인 능력 검증을 통해 입사의 가능성이 열려 있으리라는 강력한 믿음과 신뢰 때문이었을 테다. 이 신뢰가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도 함께 무너져내린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관문에서부터 접하게 되는 이러한 불신은 100만 명에 달하는 청년 취업준비생들의 희망과 꿈을 갉아먹으며 몸집을 키운다. 비리가 판을 치는 것도 모자라 어느덧 관례가 돼버린 세상이다. 믿음이 사라지고 반칙이 난무하는 사회에는 '헬조선' 따위의 자조 섞인 자기 비하 표현 만이 남아 나뒹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두렵게 하는 건 이러한 사례들을 비일비재하게 목격하고 또한 경험해 오면서 그러한 분위기에 젖어든 채 어느덧 특별한 감흥마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이야 하루 이틀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관료들조차도 아예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산다는 사실일 테다. 최근 경주에서 발생한 역대 최고 수준의 지진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술렁거렸다. 미덥지 못한 정부의 재난 대응에 국민들은 또 다시 크게 실망을 하고 만다. 하지만 이후 나온 총리의 발언은 재차 실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21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지진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 전문가 얘기가 많아 금년 초부터 지진을 대비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국민안전처가 지진 관련 예산을 1409억 원 요청했으나 실제 반영된 예산은 76억 원으로, 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삭감된 예산 중 내진설계 등 지진대비 인프라 구축 예산의 경우 2015년부터 올해까지 전액 삭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력 확보와 예산 배정 없는 안전대책은 현실적으로 전혀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총리는 지진 대비에 총력을 기울였다며 국민들 앞에서 거짓말을 늘어놓은 셈이다. 


ⓒ리얼미터


관료는 책임 회피에만 급급해 하고 있고, 기업들은 온갖 비리 행위를 그저 관례라는 이름 하에 여전히 이를 답습해 오고 있다. 대중들은 이러한 악습에 길들여진 채 어느덧 불감증마저 호소하고 있는 양상이고, 개인과 개인 혹은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 응당 형성돼 있어야 할 신뢰는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국가 지도자는 지난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패배감과 자기 비하 따위의 표현을 우려하고 나섰다. 


그러나 작금의 사회 분위기를 만든 건 과연 무얼까?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내뱉은 발언과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차버리기 일쑤이고, 국가 지도자라는 사람은 아집에 사로잡힌 채 비합리적인 마이웨이를 일삼고 있으니, 우리 사회를 견고하게 지탱해야 할 신뢰와 믿음이 남아 있을 리가 만무하다. 오늘날 헬조선이라는 끔찍한 형상을 만들고 있는 건 과연 누구인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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