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기상청은 어쩌다 시민들의 조롱거리가 됐나

새 날 2016. 9. 2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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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지진에 시민들의 불안감이 한껏 고조되고 있다. 지난 12일 경주에서 발생한 5.8 규모의 강진에 이어 19일에도 4.5의 여진이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마음에도 어느덧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19일의 지진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규모였다. 때문에 이를 여진으로 봐야 하느냐 아니면 또 다른 새로운 지진의 시작으로 봐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 채 갑론을박 중이다. 이러한 극명한 시각 차이는 가뜩이나 불안감에 어쩔 줄 몰라해 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기상청이 교통정리에 나섰다. 그러니까 19일의 지진을 여진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기상청은 "19일 발생한 여진이 다른 큰 지진을 예고하는 일종의 전진이라는 얘기는 과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같은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있어 여진으로 보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해당 인터넷 기사 말미의 댓글 칸에는 네티즌들의 거침없는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기상청이 과학을 논한다는 게 가장 비과학적이라는 등의 비아냥성 글들로 도배되고 있는 것이다.


기상청 관련 인터넷 기사와 댓글 캡쳐


그렇다면 기상청은 어쩌다 이렇듯 시민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걸까? 가장 최근에는 지진 예보의 정확성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으나, 실은 지난 여름 폭염 당시 잇따른 오보로 인해 기상청은 금지옥엽과도 같은 가치인 신뢰를 크게 잃은 바 있다. 지난 여름은 우리 역시 다시금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유난히 무더웠던 기후에 기상청의 헛발질까지 더해지니 시민들의 불쾌지수는 끝모를 데까지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이랬던 기상청이 지난 5.8 강진 이후 여진이 지속되자 3-4일 정도면 멈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여진은 이후에도 수백 차례 계속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단정짓기 어려우나 어쨌든 강한 여진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앞서의 발표를 뒤집는다. 하지만 19일 4.5 규모의 지진이 또 다시 발생했다. 이번 지진이 기상청의 주장처럼 앞선 지진의 여진인 건지 아니면 새로운 지진의 전진인 것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시민들 입장에서는 미우나 고우나 기상청의 예보를 신뢰하고 있던 터라 예측을 완전히 빗나간 이번 지진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물론 그뿐 만이 아니다. 그동안 기상청이 보여 온 지진 대처 능력은 미흡하기 짝이없다. 국내 유일의 '지진정보 알리미' 스마트폰 앱을 운영 중에 있지만 이번 지진 발생 당시엔 이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기상청 홈페이지는 지진 발생 직후 국가안전처 홈페이지와 함께 먹통이 되고 말았다. 국가기관 홈페이지가 이렇게 맥없이 막혀 버리다니,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 닥칠 경우 시민들의 안전은 과연 어느 누구로부터 보장 받아야 할까? 



기상청은 19일 지진 발생 뒤 경주 여진이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향후 발표될 기상특보에 신경 써야 한다며 신신당부에 나섰다. 하지만 이제 시민들은 이러한 기상청의 발표에 코웃음만 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쯤되면 양치기소년이 따로 없을 듯싶다. 정부가 시민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건 어느 모로 보나 불행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오늘날의 이러한 결과가 비단 기상청 일개 부처만의 문제일 리는 만무하다. 이번 지진에 임하던 재난 컨트롤 타워의 대응체계야 말로 낙제점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진 발생 직후 10초 이내에 경보를 발령할 수 있는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가동하여 신속히 대응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의 경우 12일 지진 발생시 진앙지 반경 200킬로미터 일대에 긴급재난문자가 전송되기까지 9분이 소요됐고, 19일에는 진앙지 반경 80킬로미터 지역에 전송되는 데 무려 14분이나 소요됐다. 그나마도 이를 받지 못한 시민들이 부지기수였다. 


재난상황을 실시간으로 종합 안내해야 할 국민안전처의 홈페이지는 12일 지진 발생 후 무려 3시간 이상 접속이 되지 않았으며, 19일 역시 2시간 가량 먹통이 되고 말았다. 불안에 떨고 있을 시민들의 충실한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할 정부는 이번 사태에서도 또 다시 그 무능함과 무책임이라는 안이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건 이렇듯 시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정부의 재난 대응 체계의 무능함을 정부 스스로는 여전히 느끼지 못하고 있노라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황교안 총리는 21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지진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 전문가 얘기가 많아 금년 초부터 지진을 대비해 왔다고 밝혔다. 준비를 미처 못 한 상황이었다면 그나마 납득이 될 것 같았는데, 나름 지진 대비를 철저히 해 온 결과가 이 정도라고 하니 지금 당장도 걱정이긴 하지만 우리의 미래는 더욱 우려스럽기만 하다. 


ⓒ헤럴드경제


19일 지진 이후 한때 포털사이트의 온라인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생존배낭'이란 단어가 랭크됐다. 역대급 지진으로 인해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이나 정부의 대응체계는 세월호와 메르스 이후에도 그 특유의 무능으로부터 단 한 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또 다시 각자도생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상징하는 현상이다. '생존배낭'은 지진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품목을 사전에 배낭에 챙겨놓은 것을 말한다. 지진에 따른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으나 정작 이를 해결해야 할 정부가 무능하기 짝이없자 각자도생식 생존법이 새삼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지진에 대한 장기 예측은 물론, 단기 예측조차 쉽지 않다.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한 이유와 기상청이 이번 지진을 새로운 지진의 전조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향해 비과학적이라고 단정지을 당시 시민들이 호되게 비난을 쏟아부었던 이유 역시 결국 이를 배경으로 한다. 그렇다면 지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시민들의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무얼까? 일단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초동대처가 이뤄지느냐의 여부가 관건 아닐까? 세월호참사 이래 우리 사회는 골든타임 골든타임 하며 줄곧 노래를 불러왔다. 이는 지진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더욱 유효한 명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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