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말라뮤트의 힘겨운 여름나기

새 날 2016. 8. 7.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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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더워도 너무 덥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털가죽을 뒤집어 쓰지도 않았지, 게다가 땀구멍을 지니고 있어 어느 정도의 더위 관리는 신체에서 자동으로 이뤄지니 말이다. 


진짜 문제는 동물들이다. 

특히 알래스카가 원산지인 우리집 개의 경우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개나 고양이의 체온은 사람보다 조금 높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털을 두르고 있으니 일견 이해가 되는 대목이긴 하다.


미르가 두 발을 딛고 일어서면 내 키와 맞먹는다


더위에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사람도 이 지경이거늘 두터운 털가죽을, 그것도 한 겹이 아닌 이중으로 켜켜이 둘러쌓인 털을 온몸에 두르고 있으니 이건 도무지 답이 나오지를 않는다. 땀구멍도 없이 오로지 혓바닥만으로 체온 조절을 해야 하는 우리집 개는 도대체 얼마나 더운 걸까?


지금 미르는 연중 가장 힘든 시기를 관통해 가고 있는 와중이다.

밤이 되면 조금 기운을 차리다가도 해가 뜨자마자 벌써부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연신 헉헉거리는 미르를 보노라면 너무도 안쓰럽다.

녀석을 위해 얼음이 든 페트병을 슬쩍 몸 사이로 끼워주어도 보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어찌 활용해야 하는지 전혀 헤아리지를 못 하는 눈치다.


하지만 녀석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우리집에서 어디가 가장 시원한 곳인가를..

.

오전에는 대문 부근에 자리를 잡고 널부러진 채 열심히 시멘트와 씨름 중이다가도

오후가 되면 감쪽 같이 어디론가 사라지곤 하는 녀석이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궁금하여 이름을 애타게 불러 본다.



"미르야~"


하지만 집 구석 어딘가에 있으리라 짐작되는 녀석은 아예 꿈쩍도 않는다.


"당장 내 코가 석잔데 흥~ 주인 따위야.."


아무래도 이러고 있는 눈치다.

어디에 있는지, 혹시 밖으로 도망간 건 아닌지 걱정스러워 난 집안 구석구석을 뒤진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를 않는다. 과거 집에서 탈출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는 터라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녀석이 밤이면 서식 중인 곳에도 보이지를 않고 유일한 바람길일 것이라 짐작되는 곳에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물론 짐작되는 곳이 한 곳 있긴 하다.

혹시나 하며 차고가 있는 쪽으로 향해본다. 

안쪽 깊숙이 언뜻 녀석만의 그 특이한 실루엣이 보인다. 

그냥 떡실신한 채 꿈나라로 향한 듯싶다.

내가 근처에 오니 그제서야 마지 못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시늉을 한다.


"귀찮은데 왜 온거니.." 하는 눈치다.  


"쳇~"


찜통더위에 떡실신한 미르


말라뮤트는 겨울철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최적의 생존 조건을 타고난 반면, 여름에는 완전히 쥐약이다.

때문에 털가죽을 두른 동물들이라면 다들 힘들 테지만, 이 녀석은 더욱 힘이 든다.

오늘이 입추이니 며칠만 견디면 이 힘겨운 여름도 어느덧 끝자락을 향해 가게 될 테다.


조금만 견디면 미르에게 있어 천국과도 같은 좋은 계절이 곧 돌아온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이 불볕더위를 견디기가 힘이 드는 건 매한가지다.


지난 해 발생했던 미르의 눈병이 올 여름에 또 다시 도졌다. 

자칫 여름철이면 매번 겪어야 하는 고질병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 염려스럽다.

아무쪼록 건강한 여름나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금만 더 기운내라 미르야, 가을이 오는 모습이 보이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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