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유쾌하지만 감동과 울림을 주는 영화 '미 비포 유'

새 날 2016. 6. 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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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는 루이자(에밀리아 클라크)는 마을만큼이나 작은 카페에서 근무한다. 이 카페는 그녀에게 있어 수년 동안 일자리를 제공해준 매우 고마운 곳이다. 카페를 찾는 손님들에게 환한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등 항상 활기 넘치는 그녀였지만, 어느날 갑자기 카페가 문을 닫는다며 일방적인 통보를 해온다. 졸지에 직장을 잃게 된 루이자다. 가족 모두가 돈을 벌지 못하는, 매우 안타까우면서도 절박한 처지였거늘,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그녀의 스펙이었기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녹록지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임금 조건이 제법 괜찮은 일자리 하나가 그녀에게 알선된다. 물론 시급이 여타의 일자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불의의 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환자의 간병인 역할이 주 임무였다. 환자의 가정은 오래된 성을 소유하고 있을 만큼 엄청난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명망 있고 뼈대가 굵은 가문이었다. 루이자는 가장이나 다름없는 처지인데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선뜻 해당 가정의 간병인이 되기로 작정한다. 



윌(샘 클라플린)은 사고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남부러울 것 없던 만능 스포츠맨에, 멋진 외모, 그리고 재력까지, 모든 조건을 두루두루 갖춘 매력남이었다. 하지만 한 순간의 사고는 그를 돌이킬 수 없는 운명으로 내몰았다. 목 아래 부위 전체가 마비되어 전동 휠체어와 특수 장치에 몸을 의지한 채, 24시간 간병인에 의한 보살핌을 받으며 목숨을 부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루이자는 곧바로 윌에게 투입되어 그를 간병하기 시작한다. 윌에게 있어 루이자는 촌스러운 데다 수다스럽고. 게다가 굉장히 덜 떨어진 여성으로 비치고 있었고, 루이자에게 있어 윌은 한없이 까칠하고 매우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 다가왔다. 하지만... 



아마존 '이달의 책'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기도 했던 '조조 모예스'의 동명 소설 '미 비포 유'가 이 작품의 원작이다. 루이자는 천성이 밝고 긍정적이며 매우 낙천적인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특유의 유머 감각도 발군이다. 얼굴 표정 하나 하나는 예술이라 칭해도 될 만큼 무척이나 다채롭기까지 하다. 나이와 걸맞지 않게 이마에 깊게 패이는 주름은 절로 웃음을 띠게 하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현실적인 어려움에 쫓겨 일에 대한 적성 등 정작 자신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게 다가올 법한 요소보다 오로지 시급이 세다는 이유만으로 윌과의 인연이 닿게 됐으나, 어쩌면 윌에게 있어 그녀의 등장이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천사와 흡사한 존재감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루이스 역시 윌과의 인연이 많은 것들을 변모시킨다.



이 영화는 루이자 덕분에 시종일관 밝고 유쾌하게 그려지고 있으나 실은 삶과 죽음이라는 매우 묵직한 주제가 바닥에 깔려있다. 윌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채 앞으로 살아가고픈 시간을 스스로 설정한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길 만큼 활동적이었던 그에게 사지마비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은 삶 그 자체를 고통 속으로 몰아가던 참이다.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여인이 별 볼일 없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장면을 휠체어에 앉은 채 멀뚱히 바라 봐야만 하는 그의 심정을, 우리는 같은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헤아릴 수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스위스에 위치한 세계적인 존엄사 전문 병원 '다그니타스'의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하려는 윌의 결정에 대해 이를 잘못된 판단이라며 막아서려는 건 어쩌면 주제 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물론 윤리적인 논란이 얽힌 사안이라 가치판단이 쉽지 않지만, 윌에게 살아야 할 권리가 주어져 있는 게 분명 맞다면, 사지마비라는 운명과 현대의학으로는 절대로 치료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진 이상 더 이상의 삶에 대한 애착은 사치이자 오히려 고통이 되는 상황, 그렇다면 정신이 온전할 때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 또한 그에게 주어져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영화는 이러한 논란을 집중 부각시켜 다루지는 않는다. 판단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으로 남겨놓은 셈이다.



두 사람의 성격이나 살아온 환경은 사실 너무도 달라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루이자만이 지닌 묘한 매력은 그 광활하리만치 먼 두 사람의 간극을 차츰 좁혀나가기 시작한다. 우스꽝스럽고 유치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사랑스러운 루이자, 제아무리 까칠하고 괴팍한 성격의 윌이라 해도, 그녀의 에너지 넘치는 활력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루이자는 이렇듯 자신이 지닌 에너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여성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아주 가끔 이러한 류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얼마전 읽은 '집으로 가는 아주 먼 길'에 등장하는 심령술사 '재지'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지닌 에너지와 매력을 내뿜으며 분위기를 밝게 변화시키는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고 싶기는 한데, 타고난 천성 때문인지 오히려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쉬이 피곤해지거나 감정을 급소모시키지는 않는지 반성하게 된다.


루이자의 환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보고 있으면 얼굴에 절로 미소가 피어나고, 그녀의 에너지와 기가 내게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구겨진 마음이 활짝 펴지는 느낌인 데다가 진정한 사랑과 배려 그리고 존중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등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사해주는 매우 가슴 따뜻한 영화다.



감독  테아 샤록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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