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난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과 산다

새 날 2015. 12. 2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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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개나 고양이처럼 사람과 함께하는 동물을 우린 흔히 애완동물이라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여러 혜택을 존중키로 하고, 동물이 결코 사람의 장난감이 아니라는 의미와 동시에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취지에서 우린 일찍이, 정확히는 1983년부터, 그들에게 반려동물이라는 호칭을 부여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건 결국 그 호칭에서도 드러나듯, 인간 일방만이 혜택을 받는 게 아닌 상호 존중과 교감을 통해 서로가 도움을 주거나 받게 되는 그러한 성질의 것입니다.

 

저희 집에서도 개 한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함께 생활해온 지도 어언 햇수로 7년이 되어가는데요. 매일 아침 주변을 정리해줄 때마다 따뜻하게 전해져 오는 녀석의 체온과 심장 박동 소리로부터 전 제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곤 합니다. 물론 녀석도 그 큰 머리를 제 무릎에 묻거나 기대어 오곤 하는데, 아마도 그럴 때마다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녀석과 조금이라도 더 긴 시간을 함께해 주지 못하는 제가 미안해지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우연히 TV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개가 등장하는 코너였는데, 등장했던 개의 덩치가 예사롭지 않아 문득 우리집 개 미르가 떠올랐던 겁니다. 그래서 더욱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되었는데요. TV속 개는 분명 미르보다 덩치가 훨씬 커 보였습니다. 물론 우리집 개도 덩치로 따지자면 내로라 하는 녀석이기에 TV속 개 주인이 녀석들을 키우며 느끼고 있을 고충이 대충 어떠한 것들일지 짐작이 가던 상황입니다.

 

등장한 개들의 행동이 어쩌면 우리집 개와 흡사하던지 저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형견들은 대체로 순둥이에다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는 공통된 특징이 있더군요. 우리집 미르도 그렇지만, TV속 개들 역시 똑같았습니다. 앞발을 들고 주인을 반기는 모습도 그렇거니와 기회만 닿으면 뛰쳐나가려는 습성 또한 매한가지였습니다. 질주 본능 하면 우리집 미르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스타일이지만, TV속 개 역시 엄청난 준족이었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다 금방 지치는 모습까지 어쩌면 우리집 미르와 그리도 쏙 빼닮았던지.. 그런데 이를 통해 전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녀석들은 준족을 갖춘 데다 골격 또한 다른 견종보다 뛰어나기에 그게 걸맞는 운동량 등 활동이 필요한데, 몇몇 행동들 - 이를테면 앞발을 들고 사람에게 덤비거나 툭하면 뛰쳐나가려는 습성 - 은 이를 풀지 못한 채 몸 안에 쌓아놓고 있기 때문에 발현되는 증상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 미르를 언제쯤 산책시켜 주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된 일이 되었군요. 미르에겐 너무도 미안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목줄이 고장났다거나 여러 이유들이 한 몫 하고 있긴 합니다만, 이를 확인한 지도 벌써 수개월이 지난 터라 솔직히 핑계에 불과할 뿐입니다. 전 단순히 두 발로 서서 사람에게 덤벼드는 행위가 격하게 반가워 나타나는 현상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견종 특성상 많은 활동량이 요구되어짐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로 이를 외면한 결과, 스트레스 등이 쌓여 나타나는 현상이었던 겁니다. 집을 뛰쳐나간 채 수차례 애를 먹였던 행동 역시 부족한 운동량이 주 원인이었을 테고요.

 

반려동물을 키워 오면서 그동안 전 지나치도록 일방적인 혜택만 누려 왔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저야 미르를 통해 외로움을 달래거나 심리적인 안정 따위를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르나 미르는 정작 활동량 부족으로 인해 생성됐을 법한 스트레스를 내부에 차곡차곡 쟁여둔 채 기껏해야 사람들에게 올라타는 등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호소해 오고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전 이런 행위가 반가움의 격한 표시라고 받아들이는 우매함마저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제게 과연 반려동물을 키울 자격이 있긴 한 걸까요? 혹시 반려동물이 아닌, 여전히 애완동물이라고 여기고 있던 건 아닐까요? 입으로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고 떠들면서도 정작 지나칠 정도로 일방적인 혜택만 취하고 있던 건 아닐까요? 감을 유독 좋아하는 녀석이라 종종 이를 던져 주거나 가끔 간식을 입에 물려 주곤 했는데, 이러한 행위가 그동안 미르에게 베풀었던 친절의 전부가 아니었는가 싶어 심히 반성하게 됩니다.

 

당장 목줄부터 다시 하나 장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활동량이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에게 올라타거나 자꾸만 뛰쳐나가려는 습성부터 변화시켜 나가야 할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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