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변경, 왜 꼼수인가

새 날 2015. 11. 2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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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처분에 대해 대법원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한 지방자치단체의 처분이 적법하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재판부는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등 영업규제 처분으로 달성될 수 있는 공익은 중대하고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지자체의 처분으로 대형마트의 영업 자유나 소비자 선택권 등 본질적 내용이 침해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지난 2012년 서울 동대문구청과 성동구청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따라 구 조례로 관내 대규모 점포와 준대규모 점포에 대해 0시부터 오전 8시까지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한편, 매달 둘째 넷째 일요일을 의무 휴업일로 지정한 바 있다. 그러자 이마트, 롯데쇼핑, 에브리데이리테일, GS리테일, 홈플러스, 홈플러스테스코 등 6개의 회사는 구의 처분이 재량을 넘어선 과도한 규제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아시아경제

 

이에 대해 1심에서는 "중소유통업자나 소상인, 전통시장의 매출 증대에 큰 영향을 미쳐 공익 달성에 효과적이다"라며 지자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2심에서는 소송을 낸 이마트 등이 유통산업발전법상 대형마트는 점원의 도움 없이 소매하는 점포의 집단으로 규정돼 있는데 반해 영업 제한을 받는 해당 점포는 점원이 도움을 제공하고 있기에 대형마트로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1심 판결을 뒤집은 바 있다.

 

이로써 4년 가까이 끌어 온 대형마트의 영업 제한에 대한 위법성 논란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대형마트들의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다. 더 나아가 대법원의 판단이니 어쩔 수 없이 따르긴 하겠으나 쉽게 물러서진 않겠노라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구체적으로는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옮기는 방안을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마트들은 의무휴업 제도를 지키면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은 휴업일을 공휴일에서 평일로 옮기는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실제로 평일보다 공휴일에 매출이 많이 발생하는 탓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현재 일부 지자체에서는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지역 상인과 협의를 통해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옮기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단다. 이러한 결과가 가능한 이유는 현행법상 ‘이해 당사자와 합의를 거쳐 공휴일이 아닌 날을 의무 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마트들이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휴업일을 바꾸려 시도하는 것은 애초 의무 휴업 제도의 시행 취지와는 전면 배치되는 행위이다.

 

 

왜냐하면 지역별로 요일에 따른 매출액 차이가 크든 작든 드러날 수는 있으나, 휴일 등의 특정 요일을 떠나 대형마트가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요일이라면 전통시장 등 소상인들 역시 마찬가지 입장에 놓여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휴업일을 마트가 원하는 요일로 지정하게 되면 그나마 상생이라는 의무휴업 제도의 취지는 무색해지고, 골목상권의 최후 보루이자 상징과도 같은 해당 제도는 결국 무력화되고 만다.

 

대형마트는 그동안 의무휴업 강제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납품업자 등 마트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업자 등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해 왔다. 아울러 대형마트 영업 규제로 인해 제한됐던 소비가 애초 목적인 전통시장 매출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 데다, 심지어 소비자들의 관심과 실제 이용이 어느새 온라인 쇼핑으로 모두 옮겨가고 있어 해당 매출이 지난해 대형마트를 추월하였고 모바일쇼핑은 3년 새 22배나 급증했다며 자신들에 대한 영업 제한으로 엉뚱한 주체만 이득을 본다는 이유로 의무휴업을 반대해 왔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몰이나 모바일 쇼핑의 성장세는 마트나 전통시장 등과는 전혀 무관한, 디지털 시대에 어울릴 법한 하나의 쇼핑 트렌드로써 이것이 대세가 되어가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결과에 불과하다. 아울러 나 역시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제는 의무휴업 제도가 익숙해진 탓에 해당 휴업일이 되면 급한 건 주변 점포에서, 그렇지 않을 땐 전통시장을 찾아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곤 한다. 이는 초기에 다소 불편했을 수도 있는 해당 제도가 어느덧 자리를 잡았다는 의미일 테고, 대형마트 대신 전통시장 등으로 향하게 되는 빈도도 분명 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기에 긍정적인 효과임이 분명하다.

 

대형마트는 전통시장 등에 의무 휴업으로 인한 혜택이 전혀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이를 반대해 오고 있다. 그러나 소상공인진흥원과 시장경영진흥원의 공동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소매업체 및 전통시장의 매출액과 평균 고객이 의무휴업일 전주에 비해 각각 10.3%와 10%씩 증가했다는 의미있는 통계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서울 동대문구와 성동구가 의무휴업일 지정 이후 중소 소매업 및 전통시장 내 점포 1783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40%가 넘는 전통시장 점포에서 매출과 고객 수가 10% 이상 늘었다고 한다.

 

ⓒ뉴시스

 

대형마트들이 언제부터 소비자들을 끔찍이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소비자 불편을 핑계로 의무 휴업을 반대하며 나서고 있으나 실제 이용 패턴을 사례로 들었듯 이젠 해당 제도가 익숙해진 탓에 일반 소비자들은 전혀 불편함 따위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고양이 쥐 생각은 그만 하시라.

 

의무휴업 제도를 무력화하려는 대형마트의 휴업일 변경 시도는 당장 멈추어야 한다. 대법원 판결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휴업일을 슬그머니 평일로 바꾸려는 시도는 지역 소상인들과 시민들을 기만하는 꼼수에 불과하다. 의무휴업 제도는 시장지배력이 뛰어난 대형마트들 틈바구니 속에서 속절없이 무너져가는 전통시장 등 소상인들에게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에 불과하다. 승자독식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그나마 애써 자리잡은 상생이라는 대의명분을 지나친 욕심과 꼼수 때문에 무너뜨리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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