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잇따른 외교안보라인 엇박자, 우려스러운 이유

새 날 2015. 10. 24. 11:30
반응형

지난 14일 진행됐던 대정부질문에서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입국을 허용할 수 있다는 황교안 국무총리의 발언은 많은 논란을 낳은 바 있습니다. 왜 아닐까 싶습니다. 국무총리의 입을 빌려 나온 발언은, 곡해가 됐든 사실이 됐든 간에 공교롭게도 일본 자위대의 대한민국 파병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파문이 커지자 황 총리는 정부 동의가 없으면 일본 자위대는 들어올 수 없다는 원칙적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거듭 해명하고 나섰습니다만, 해당 발언이 알려진 뒤 일본 언론은 한국 정부가 자위대를 받아들이겠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총리는 자신의 발언이 곡해된 것이라 말할는지는 몰라도 일본에 자위대의 우리 영토 상륙을 허용한다는 식의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겨레

 

그런데 황총리 발언의 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자위대의 한반도 파병과 관련한 파문이 또 한 차례 일고 있습니다. 이번엔 국방부를 통해서입니다. 지난 20일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한국의 유효 지배 범위는 휴전선 남쪽이라며 일본 자위대의 북한 진입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약 1시간 가량 이어진 이번 회담이 끝난 후 기자들을 상대로 회담 내용을 소개하였습니다만, 이러한 부분에 대해선 쏙 빼놓은 채였습니다.

 

해당 사실은 되레 다음날 일본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고, 그러자 국방부는 뒤늦게 일본 측 발언을 서로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던 부분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출국하기 전 일본 방위상은 비공개 합의는 없었다고 했고, 국방부 역시 그제서야 비공개라고 한 적은 없다며 또 다시 말을 바꾼 것입니다. 이러한 국방부의 어이없는 대응은 가뜩이나 미국의 동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중국의 군사 굴기가 맞물리며 외교적으로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우리의 처지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미국은 일찌감치 동아시아 세력 재편의 중심 파트너로 일본을 점찍은 바 있습니다. 일본 역시 그에 화답하고 나선 상황입니다. 세계 전역 어디에서든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보통국가화의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미일을 중심으로 한 동맹에 한국을 곁다리로 묶고 있는 형국입니다. 즉 한미일동맹이라는 삼각구도의 축은 일본 쪽으로 심하게 기울고 있습니다. 미국의 전략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중국은 우리나라의 처지를 역이용하려 들 공산이 큽니다. 우리에게 유무형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도 다름아닌 그의 일환입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곤혹스러운지는 최근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연이은 미국 방문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 바 있습니다. 흔히 샌드위치 신세라고들 합니다. 물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며 균형자적 역할을 할 수 있는 호기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이를 즐겨야 할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즉 외교적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는 표현이 걸맞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작금의 상황은 자칫 단 한 차례의 오판만으로도 민족의 공멸을 불러올 수도 있는 위기 국면임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불과 수십년 전의 역사가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우려스럽게 만드는 건 다름아닌 우리 외교안보라인의 움직임입니다. 가뜩이나 위태로운 주변 정세 속에서 무언가 불안감을 씻을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혈세를 쏟아부으며 자신만만해하던 KF-X 사업도 좌초 위기에 놓였으며, 총리라는 인물은 공공연하게 일본 자위대의 우리나라 진입을 인정하고 나섰습니다. 한일 국방장관회담에서 보여준 국방부의 대응은 어이없기 짝이 없습니다.

 

ⓒ뉴스1

 

일본 자위대의 북한 진입 문제를 한미일 3국이 협력해 나간다고 합의하겠다는 건 결국 일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밖에 더 될까 싶습니다. 아울러 우리 영토의 자위대 상륙 문제를 일본이나 미국과 협의한다는 자체는 이미 우리의 주권을 포기했노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총리의 발언 하나로 인해 일본은 벌써부터 우리나라가 우리의 영토에 자위대의 파병을 허용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렇듯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을 놓고 볼 때 우리의 외교안보라인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물론 샌드위치에 처한 우리의 처지가 녹록지 않은 건 분명합니다. 그만큼 운신의 폭이 좁다는 의미가 될 테니까요. 다만, 그럴수록 오히려 더욱 확고한 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국 군대의 우리 영토 진입 문제에 대해 단호한 어조로 선을 긋지 못하는 태도를 볼 때 과연 제대로 된 전략 따위가 있기는 할까 싶습니다. 적어도 일국의 국무총리라면, 국방부장관이라면, 우리 영토와 관련한 사안 만큼은 주변국과의 협의를 말하기에 앞서, 주저없이 그리고 강한 어조로 수호 의지를 내비쳐야 정상적인 대처 아닐까요? 우리의 외교안보라인이 심히 우려스러운 이유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