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메르스 공포 퇴치, 신뢰 회복이 관건이다

새 날 2015. 6. 1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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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주말을 맞아 동대문 상점가를 방문했던 일이 연일 화제입니다.  여전히 메르스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지나치게 공포감에 휩싸일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려는 요량이었던지, 대통령은 마스크조차 착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어쩌면 누군가의 표현처럼 보여주기식 행보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보여주기식이 됐든 그렇지 않든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이러한 행위는 필요악에 속하는 영역입니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후입니다.  청와대가 이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대변인 서면 브리핑을 내놓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확산으로 해외 관광객이 급감하고, 국내 소비 위축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대문 상점가 밀리오레를 예고 없이 방문하여 상인들을 위로하며 민생 현장을 점검했습니다.

 

오늘 방문한 밀리오레에는 주말을 맞아 쇼핑에 나선 시민들이 대통령의 깜짝 방문에 놀라며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들었고, “진짜 박근혜 대통령 맞아? 대박!!”, “대통령 파이팅, 힘내세요” 등을 외치며 몰려드는 탓에 근접 경호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경호에 애를 먹기도…

 

시민들은 대통령이 움직이는 곳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응원을 해 주었으며, 많은 시민들은 에스컬레이터 주변에서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하는 대통령을 직접 보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시민들은 연신 휴대전화 셔터를 눌러대며 촬영을 했고,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대통령을 보여주기 위해 안거나 목마를 태우기도 했습니다. 사진 촬영에 성공한 사람들은 기뻐하기도…

상인들은 “더운데 우리들을 도와주시려고 일요일인데도 나와 주셨네요. 대통령 최고!!”, “다른 바쁜 일도 많으실 텐데 여기까지 와 주셔서 고맙다”, “중국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너무 없어 어렵다”, “너무 어려운데, 대통령님이 잘 해결해 주시길 기대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은 1층에서 지하 1층, 다시 1층으로 이동하며 20여 개의 상점을 들러 상인 및 쇼핑객들과 대화를 나누느라 당초 예상된 방문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대통령은 동대문 상점가에서 원피스 2벌, 머리끈 2개, 머리핀 1개를 구입하고, 상인으로부터 네잎클로버 브로치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쇼핑객 중 말레이시아, 몽골, 중국인들도 몰려들어 대통령에게 말을 걸며 사진 촬영을 요청하기도. 특히 말레이시아 관광객(3명)은 사진 촬영 이후 “한국대통령과 사진 찍게 돼 놀랍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건물을 나오는 길에 도로 맞은편에 운집해 있던 시민들이 일제히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사진을 찍고, 일부는 환호와 함께 손을 흔들기도. 이를 본 대통령이 차에 바로 타지 않고, 길을 건너 기다리던 시민들과 반갑게 악수했습니다. 길을 건너면서 2층 카페에 있던 젊은 여성들이 손을 흔들자 잠깐 발길을 멈추고 웃는 얼굴로 일일이 손을 흔들어 주셨습니다. 

 

ⓒ청와대

 

뿐만 아닙니다.  박 대통령이 동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패션 아이템들을 청와대가 공개하고 나섰습니다.  패션 상점가에서 직접 구입한 원피스, 브로치, 머리끈 류 등을 찍은 사진인데요.  물론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특정한 방향으로의 의도였음은 차치하더라도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어떠한 의중을 갖고 이러한 움직임을 보였는지는 충분히 납득 가능한 상황입니다.  메르스 공포 확산으로 인해 위축된 내수 경기를 진작시키고자 대통령이 몸소 기운을 북돋는 행위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싸늘함 일색입니다.  심지어 지금이 옷 자랑할 때냐며 냉소와 비아냥이 가득 담긴 표현들이 온라인에서 난무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에 대해선 '박비어천가'를 읊고 있다며 현실 감각이 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제는 대통령의 행동 하나 하나가 밉상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새입니다.  동대문 상점가를 방문한 그날 박 대통령은 부근에 위치한 서울대병원을 방문하여 의료진을 격려하였는데요.

 

ⓒKBS 방송화면 캡쳐

 

TV를 통해 그 과정이 전파되었는데, 병원 곳곳에 불여진 '살려야 한다'는 문구가 시청자들의 눈에 영 거슬렸던 모양입니다.  아울러 이와 함께 기계실에서 나온 간호사들의 방호복 차림이 지나치게 과장된 설정 같다는 의혹마저 불거졌습니다.  물론 실제로 설정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만, 제가 볼 땐 일부 시청자들이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던 결과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중들의 이러한 반응이 보편적일 테니, 청와대가 내놓은 대통령의 동대문 방문 브리핑이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진, '박비어천가'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 지극히 당연한 노릇입니다.  .

 

대통령은 연일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정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메르스, 별 거 아니라며 손만 잘 씻고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면 일상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도 합니다.  불안감과 공포를 떨쳐내고 모두가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도 말을 합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과 정치권은 메르스의 공포감이 과장된 것이라 말을 하고 있지만, 언론을 통해 시시각각 올라오는 메르스 관련 소식은 무지와 자만 때문에 작금의 결과가 빚어진 것이라며 여전히 두려움 일색입니다.  말뿐이 아닌, 실제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믿음을 국가가 먼저 심어 주어야 할 텐데, 이는 눈곱만큼의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정부가 메르스와 관련하여 내놓고 있는 정책은 정말이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주먹구구식 내지 탁상행정의 전형을 보이고 있어 대중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5일 내놓은 관광업계 지원 및 대응방안에 따르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메르스에 감염될 경우 치료비 및 여행경비를 보전해 주는 동시에 보상금 명목으로 3000달러를 지급하고, 사망 시엔 최대 1억원을 주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인데요.

 

최근 10만명이 넘는 외국 관광객이 한국 관광을 취소했다는 언론보도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이로 인한 관광업계의 타격은 상상을 초월하리라 전망됩니다.  내수 시장에 미칠 파장도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를 막고자 내놓은 고육지책 같습니다만, 그야 말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몇 푼의 보상금을 쥐어 준다는 조건으로 자신의 목숨을 담보 삼아 선뜻 여행을 선택할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메르스 때문에 정말 심각한 수준에 처한 게 아닐까 하는 오해만 불러일으키기 십상이지 않을까요? 



결국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건, 또한 특단의 행동을 취하든, 국민들로부터 나오는 건 긴 한숨이요, 냉소 섞인 반응 일색인 데에는 바로 그동안 정부가 잃은 신뢰로부터 기인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적나라하게 목도했던 국민들, 또 다시 메르스 국면에서 그에 못지 않은, 아니 그 이상의 무능과 무책임한 행태를 몸소 겪고 있는 와중입니다.  대통령은 국민들더러 일상으로 복귀하라고 하소연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시각에서 볼 땐 마냥 허울 좋은 소리로만 들릴 뿐입니다.  아니 조금 더 속내를 내비치자면, 대통령이 동대문 상가를 돌아다닌 행위조차 최근 30%대로 떨어진 지지율 상승을 꾀하려는, 일종의 퍼포먼스로밖에 와닿질 않습니다. 

 

이는 국가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 경우 나타나게 되는 현상의 전형입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음을 의미입니다.  국가를 향한 국민의 신뢰에 경고등이 켜진 셈입니다.  메르스 국면에서 국민들이 스스로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었던 건 세월호 참사에서 뼈저린 고통을 통해 얻었던 교훈 내지 학습효과 덕분입니다. 

 

실제로 작금의 메르스 공포는 사실보다 과도할 정도로 부풀려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지만 안전이나 생명에 관한 대처는 모름지기 모자람보다 지나침이 훨씬 낫습니다.  안전불감증이 유독 심한 우리의 경우 이러한 자세는 더욱 절실합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불안해 하지 말라고 한들 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국민은 아무도 없습니다.  외국인에게 3000달러를 보상해 줄 테니 우리나라로 여행 오라고 한들 이 때문에 올 사람 역시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은 메르스 오염국가라는 오명만을 뒤집어 쓴 채 국격을 한 단계 떨어뜨리는 결과만을 빚고 말 것입니다.

 

백번의 말로 메르스의 공포로부터 안심하라며 떠벌리기보다 실제 불안감이 해소될 경우, 국민들은 누가 뭐라 하든 개의치 않은 채 자연스레 일상 속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메르스가 모두 퇴치되고, 우리나라 구석구석 그 어느 곳을 돌아다니더라도 안심할 수 있을 만큼 청정 지역이라는 신뢰를 얻게 된다면, 외국인 관광객은 절로 우리 땅을 밟게 될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다름아닌 신뢰 회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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