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대통령의 중동 발언에 청년들은 왜 분노하는가

새 날 2015. 3. 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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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률이 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18일 발표된 통계청의 2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이 11.1%에 이른 것이다.  2013년 12월 정부가 ′청년 맞춤형 일자리 대책′을 발표했을 당시가 7%대였으니, 불과 1년여만에 큰 폭으로 증가한 셈이다. 


하지만 청년실업의 심각성은 굳이 이렇듯 복잡한 통계 수치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최근 유행어를 통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덧 '88만원세대'를 거쳐 '삼포세대', '오포세대'에 이르더니 급기야 청년실업과 신용불량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청년실신'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취업절벽에 신음하고 있을 이 땅의 청년들을 북돋기 위해 한 말씀 거들고 나섰다.  공교롭게도 통계청 실업률 발표 다음 날인 19일 제7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였다.  "경제 재도약을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염원하는데 그것에 대한 하늘의 응답이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메시지이니,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모두 중동으로 진출하자" 라는 언급이었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 회의장 여기저기에선 웃음꽃이 활짝 피는 등 상당히 좋은 분위기였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인터넷에서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청년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네티즌들이 특별히 더 까칠해서였을까?  그렇다면 악의가 아닌 일종의 덕담 비슷한 형태이자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약간의 농담 성향의 발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왜 대통령의 발언에 분노했던 걸까?



청년실업난에 허덕이는 이 땅의 청년들에겐 해당 문제가 삶의 전부로 다가오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때문에 청년들의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켜켜이 쌓여가던 와중이다.  심지어 세대 간 갈등으로 비화되는, 악순환을 빚기도 한다.  버겁기만 한 처지로 자신들을 내몰리게 만든 기성세대와 부모뻘 세대를 원망하며 분노 표출 대상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것이다.  얼마 전 불거진 알바몬 광고를 둘러싼 최저임금 논란은 청년들의 내재된 분노가 심상치 않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9일엔 호프집 종업원과 치킨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겹게 생계를 꾸리던 20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적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끔찍한 비극은 없어야 하는데 현실은 달랐다.  활력 넘치도록 경제 활동에 몰두해야 할 청년 시기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현실은 그 자체로 국가적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비극적이며 암울한 상황에서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듯한 데다 이를 농담조로 발언한 점 때문에 청년들이 극도로 분노한 듯싶다.  물론 대통령 발언의 진의가 청년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청년들 입장에서 바라볼 땐 일종의 칼에 깊게 베인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다. 

 

대통령은 중동 붐을 얘기하고 있지만, 대통령의 표현처럼 중동 붐이 진정 하늘에서 보내 온 천상의 메시지가 될런지는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6-70년대의 중동 현실과 작금의 그것을 단순 비교하는 자체가 모순이거니와 자칫 인위적인 제2의 중동 붐은 이명박 전임 대통령이 펼쳤던 실패한 자원외교의 재판이 될 가능성마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 논란에 대해 청와대는 ‘청년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표현인데 꼬투리를 잡고 있다’며 억울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나 개인 간의 단순 통화에서 '대통령 처형'을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를 체포하고, 또한 대통령 비방 유인물을 뿌렸다는 이유로 처벌할 만큼 대통령 자신에 대해선 꽤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청년들의 아픈 부위를 재차 후벼파는, 현실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선 이 땅의 청년들더러 이를 가벼이 못 받아들인다고 하소연하거나 그저 웃어 넘기지 못 한다며 억울해하는 행태는 그야말로 쓴웃음짓게 만들 정도로 썰렁한 개그 한 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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