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선행학습금지법 개정에 반대하는 까닭

새 날 2015. 3. 2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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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시행된 '선행학습 금지법'은 우리 국회의 입법 수준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알리는 일종의 바로미터였다.  물론 과도한 선행학습이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다는 논리엔 일정 부분 수긍하며, 우스꽝스럽기조차 한 법이 그를 줄이겠노라는 고육지책으로부터 마련된 취지였다는 사실에도 역시 공감한다.  하지만 행정부 수반의 한 마디로부터 비롯된 이 괴이한(?) 발상은 창의력 대장들로 즐비한 우리 입법부 의원 나리들의 손을 거치면서 비로소 꽃을 피우게 된다. 

 

모호하기 이를 데 없거니와 형이상학적 개념일 수밖에 없는 선행학습 자체를 막겠다며 과감히 입법화를 시도한 끝에 결국 빛을 보게 된 셈이다.  당시에도 논란은 피해갈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법 시행에 들어갔다.  그런데 불과 6개월만에 교육부가 해당 법 일부를 손질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규 수업 시간이 아닌 '학교 방과후 교실'에서만큼은 선행학습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물론 왜 이러한 방안이 나왔는지는 충분히 짐작되는 상황이다.  애초 이 특별법은 초중고교와 대학 입시에서 교육과정보다 앞선 내용을 가르치거나 시험으로 출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 근본 취지였다.  하지만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사교육 분야가 이의 적용으로부터 배제되면서 예상했던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학부모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음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차마 공교육 내에서의 선행학습을 허용하기엔 6개월 전 자신들이 만들어 시행한 선행학습금지법이 우스운 꼴이 될 듯싶으니, 법의 취지는 유지함과 동시에 그의 대안으로 꺼내든 게 결국 방과후 교실에서의 선행학습 허용이라는 일종의 편법 카드다.  방과후 교실은 정식 교육과정의 범주가 아닐 테니 공교육에서의 선행학습 금지라는, 관련 법의 근간과 취지를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도 사교육으로 집중되던 선행학습의 일부를 공교육으로 흡수하여 교육 주체들의 불만을 일정 부분 잠재우겠노라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사교육을 줄여보겠다는 취지로 이러한 방안을 꺼낸 것이라면 교육부의 접근 방법은 애시당초 잘못됐다.  선행학습의 유발 인자를 없애는 게 가장 근본적인 치유 방법일 텐데, 이는 애써 모른 체 또 다시 땜질처방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어떤 병이든 그 원인을 찾아내어 완전히 뿌리를 뽑지 않는 이상 증상은 여전할 테며, 되레 내성이 쌓인 채 증상만 악화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현재 고등학교 교과 과정 중 사교육 의존률이 가장 높은 과목은 수학일 테다.  초등은 물론 중등에서의 사교육은 대학입시를 위한, 고등학교를 바라보고 이뤄지는 것이기에 모든 사교육의 근본 뿌리는 결국 고등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수학 교과의 학교내 학습 패턴을 곰곰이 지켜보고 있자니, 현재와 같은 문제점이 노정될 수밖에 없음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학사일정에 대한 자율권이 거의 없는 일반고의 기준으로 볼 때, 정상적인 수업 시간 내 모두 소화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학습 분량을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탓이다.

 

때문에 초등학교 때 중등 과정을 모두 마치고, 중학교 때 고등 과정을 미리미리 해치우는, 무척이나 과도해 보이기까지 한 선행학습조차 지금 생각해 보니 오히려 이런 방식으로 자녀들의 학습을 철저히 대비해온 학부모들이 그나마 현명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만약 고등 과정을 단 한 학기라도 앞서 학습해놓지 않은 채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될 경우 아이들은 얼마 있어 이른바 '수포자'가 되기 일쑤다.  지나친 학습량 때문이며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심지어 하루에 한 단원을 끝마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사정을 누구보다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학교에선 오히려 사교육을 권장하고 있는 입장이다.  정부에선 사교육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정작 일선 학교에선 자신들도 어쩔 수 없으니 사교육에 맡기라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고등학교 교과 과정상 맹점에 대해선 도외시한 채 무턱대고 사교육을 하지 말라거나 선행학습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결국 언어도단이다.  때문에 정부의 말따위는 귓등으로 흘린 채 고등 과정을 미리미리 대비하는 학습 방식이 자녀를 위한, 조금이라도 현명한 학부모가 되는 지혜로운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 건, 이른바 특목고나 자사고 등의 학교에선 학사운영의 자율권이 부여된 탓에 선행학습금지법과 크게 상관없이 탄력적인 운용이 가능한 데다, 그렇지 않더라도 사교육으로 중무장한 우수한 아이들이 포진돼 있기에 그렇지 못한 일반고와의 수준 차이를 더욱 벌리고 있다는 점이다.  잘못된 커리큘럼 하나가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는 사교육에 의존케 만들더니, 어느덧 일반고를 더욱 슬럼화시키고 교육의 부익부빈익빈 현상마저 가속화시키는, 나비효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사교육을 왜 할 수밖에 없는가의 근본 원인은 나몰라라 방치한 채 무턱대고 이를 하지 말라며 떼를 쓰거나 간혹 윽박지르기까지 하고 심지어 법으로 이를 강제하고 나선 상황이지만, 이는 우물가에서 숭늉찾는 격이 아닐까 싶다.  난 사교육을 방지하겠다며 애쓰고 있는 정부 관리들의 자녀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학습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혹여 우리 교육제도를 불신하며 죄다 해외 유학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과도한 사교육을 빚게 만드는 건 정규 수업만으로는 절대 소화할 수 없을 만큼 과도하게 짜여진 교과 과정 탓이다.  이를 해소하지 않은 채 엉뚱한 땜질처방만을 남발하는 건 결국 교육 주체들을 우롱하는 처사이자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때문에 난 이번 법 개정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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