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인정 받고 싶은 욕망과 윤리의식 사이

새 날 2015. 3. 19. 12:40
반응형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 받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이는 매슬로우가 주장한 생리적이거나 자연적인, 비교적 하위 단계의 욕구만큼이나 강렬하고 중요한 욕구 중 하나이기에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사안이다. 

 

때문에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할 시 누구나 이를 괴로워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반면 자신이 특정 분야에서 인정받는다고 여길 경우 그 분야에서만큼은 절대로 타인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게 보편적인 사람들의 모습일 테다.  결국 인정 받고 싶어하는 욕구는 그동안 개인의 성장은 물론이거니와 인류 문명의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한 기본 원동력으로 작용해 왔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인류의 인정 욕구가 낳은 산물 중 하나임이 분명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우리 사회에 획기적이며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세인들의 잠자고 있던 욕망을 일시에 깨우며, 그에 의해 개발된 도구들을 무분별한 자기 욕망 실현의 장으로 전락시키는 게 아닐까 싶은 우려를 낳게 한다.  물론 이 또한 과거엔 전혀 존재하지 않던 새로움에서 비롯된 과도기적 현상이기에 언제나 그렇듯, 가까운 훗날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예컨대 가장 최근에 벌어진 영국에서의 한 사건을 살펴보자.  지난 14일 영국의 한 고층건물 옥상 난간에 위태롭게 앉아있던 남성을 향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뛰어내리라며 부추겼고, 실제로 그가 난간에서 몸을 던지자 기다렸다는 듯 남성의 숨지는 전 과정을 휴대전화에 담기 바빴던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고층건물 옥상에 선 위태롭기만 한 사람을 도와주기는커녕 뛰어내릴 것을 부추길 정도로 사람들의 윤리 의식은 인정 받고 싶은 욕망 앞에 여지없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하여 다를까?  얼마전 정신병을 앓던 20대 여성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도심 대로변을 활보하는 동안 그녀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며, 오히려 이를 휴대전화로 촬영하여 SNS에 퍼뜨렸던 사건이 있었다.  자칭 극우라 표현하고 있는 '일베' 커뮤니티에선 유독 패륜적인 행동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의 연유 또한 인정 욕구 앞에 자극만을 좇는 작금의 세태와 궤를 함께한다.  온라인상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보다 자극적인 소재를 찾게 된 것일 테고, 이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범죄 행위로 이어져 왔던 셈이다.  IS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김모군 역시 현실세계에서의 인정 받지 못함을, IS라는 미지의(?) 세계를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선택한 것으로 읽힌다.

 

수년전 동물원에서 한 사람이 맹수에게 물려 죽어가던 상황을 빤히 지켜보면서도 도와주기는커녕 이를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기 바빴던 한 기자와 영화 '나이트크롤러'에서 자극적인 동영상 촬영을 위해 자신이 직접 사건을 만들어내거나 조작하는 범죄행위마저 서슴지 않았던 프리랜서 역시 결국 사회나 회사로부터 인정 받고 싶은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파렴치한 행위에 다름아니다.  

 

우린 특별히 좋은 장소에 가게 되거나 아니면 조금은 득특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나게 될 경우, 그리고 무언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볼거리들을 접하게 될 경우 언젠가부터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이미지부터 남겨놓는 버릇이 생겼다.  자신이 운영하는 SNS에 이를 올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함이 주 목적일 테다.  비슷한 류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다 보니 보다 자극적이거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소재거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돼간다.  어느덧 너도 나도 SNS상에서 벌이는 허세 경쟁쯤은 이제 아무 것도 아닌 세상이 돼버렸다.  '좋아요'의 갯수가 인정에 대한 잣대가 된 채 이를 유발하기 위해 점차 무리수가 동원되어가던 찰나다.  인정 받기 위한 욕구 앞에 윤리의식 따위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갈수록 좁아져간다.

 

이렇듯 인간이 지닌 욕망 앞에 기본 윤리의식마저 차츰 희미해져가는 양상이다.  타인에게 인정 받고 싶은 욕구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현될 경우 자신과 사회 발전을 이루는 원동력이 될 수 있겠지만, 무분별한 욕망 추구는 반대로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적으로 둔갑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테다.  이 세상에서 인정 받고 싶지 않은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때문에 마치 모든 병의 인자가 되는 해당 병원균이 몸 안에 조금씩 존재하고 있듯, 우리 모두의 마음 한 켠엔 어쩌면 작은 '일베'가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욕망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겐 이것이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발현되는, 그러한 성질의 것이 아닐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