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허당 맹수 '말라뮤트'는 왜 키우는 걸까

새 날 2015. 3. 1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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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차곡차곡 쌓인 미르의 때를 기어코 모두 벗겨내고 말았다.  실로 엄청난 작업이었다.  그 사이 몸이 더 불었는지 욘석을 욕실까지 들고 가느라 허리가 끊어질 뻔했다.  물론 아들 녀석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결코 어림없는 일이었다.  털에 끼인 때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서로 엉킨 채 떡이 된 털뭉치들이 더욱 큰 문제였다.  

 

어쨌거나 다 씻기고 털도 정리해주니 미르의 인물(?)이 모처럼 살아났다.  그야말로 훤해진 것이다.  털에선 윤기가 좔좔 흐를 정도로 깨끗해졌다.  대신 욘석을 씻기고 예쁘게 봄 단장을 했던 우리는 파김치 모드가 되어야만 했다.  욘석의 털을 다 말린 뒤 바깥에 풀어놓고, 우린 달콤한 잠을 청했다.

 

원래는 오후에 욘석을 산책시킬 요량이었지만, 힘을 모두 소진한 탓에 오후 내내 취침 모드에 빠져들어야만 했다.  결국 저녁밥을 먹고나서야 조금 기운이 돌아왔다.  어둑어둑해진 뒤에야 비로소 미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이 또한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미르는 좋아 펄쩍펄쩍 뛰고 난리도 아니다.  몹시도 감개무량했던 모양이다.  녀석이 뛰면 함께 보조를 맞춰 뛰어주고, 걸으면 또 그에 맞춘 채 산책길을 함께했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를 일이 있어 잠시 부근에 욘석을 묶어놓았더니 그새 난리가 났다.  미르를 만져보겠다며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친 거다.  미르의 덩치가 워낙 큰 탓에 이러한 일은 흔하게 벌어지는 터, 때문에 그동안 산책을 할 때면 웬만해선 사람들을 피해다녔는데 이날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들 중 한 어르신의 말씀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미르더러 사자처럼 생겼단다.  물론 약간의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말라뮤트라는 견종이 분명 맹수를 닮긴 했다.  떡 벌어진 어깨하며, 날카로운 이빨, 부리부리한 눈, 튼실한 데다 도톰하기까지 한 앞발, 그리고 달릴 때의 그 날렵한 모습은 영락없는 맹수다.

 

그러나 정확히 거기까지였다.  겉모습은 분명 맹수를 닮았지만, 실은 허당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득달처럼 달려들 땐 무서운 기세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정작 물어뜯으려 달려든다기보다 사람에게 안긴 채 이쁨을 받고 싶어 하는 행동이다.  한 번 생각해 보라.  맹수처럼 생긴 놈이 마구 달려오더니 이내 쓰담쓰담해 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말이다.  진짜로 허당 아니겠는가?

 

또 다른 분이 묻는다.  집은 잘 찾아오느냐고, 물론 아니라고 대답해야 했다.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다.  주인은 잘 따르느냐고, 물론 난 거짓말을 잘 못하기에 이 역시 아니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대뜸 그럼 왜 키우냔다.  글쎄 자기집도 못찾고 더구나 주인에 대한 충성심도 없는 녀석을 우린 왜 키우고 있는 걸까? 

 

외양은 분명 맹수처럼 부리부리하게 생기고 골격도 뛰어나지만, 이는 허당에 불과할 뿐이고 집도 못찾는 데다 주인도 못 알아보는 녀석을 뭐가 좋아 기른단 말인가.  하지만 일반 견종으로부터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어쩌면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성 그 자체가 좋은 것인지도 모를 일인 데다, 앞서 언급한 단점 모두가 반대로 이 견종만의 장점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욘석을 기르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말을 해놓고도 무슨 말인지 당최 종잡을 수 없다는 건 여전히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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