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백설공주 살인사건> 비주류를 향한 따뜻한 시선

새 날 2015. 2. 1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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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일본 영화들로부터는 묘한 공통점을 엿볼 수가 있다.  뭐랄까.  우리와의 정서적 차이가 크고 문화적 공감대가 다른 탓인지 영화 중간중간 뜬금없이 낯설게 느껴져 왔던 이질감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일본영화의 편견으로부터 일정 부분 벗어나게끔 해 준다.  일본 영화 치고는 나름의 수작이라 할 만하다. 

 

한 여성의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적 논란은 언뜻 단순한 이야기의 얼개에 불과해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 내포돼 있는 담론들로부터는 생각할 거리들을 제법 던져 주고 있으며,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어느날 시마네현 유원지에서 여성의 사체 한 구가 발견된다.  그녀에게선 흉기에 의해 무수히 찔린 흔적이 발견됐고, 심지어 불에 태워지기까지 했다.  한 방송국의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던 유지(아야노 고)는 이른바 '백설공주'라 불릴 만큼 미모가 출중했던 살해된 여성이 일반 대중들에게 흥미로운 화제거리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하고, 해당 사건의 전모룰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한다. 

 

 

살해된 여성의 회사를 찾아 동료 직원들을 인터뷰하며 알게 된 새로운 사실과 자신이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하던 그는 여러 정황상 살해된 백설공주의 동료 직원인 미키(이노우에 마오)라는 또 다른 여성을 살해범으로 특정하고,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사건 추적 방송을 내보내는데...

 

 

유지에 의해 하루아침에 용의자로 의심 받고 추적당하던 미키는 백설공주에 비하면 잘나지도 못한 외모에 외향적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기에 평소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은 채 특별히 눈에 띠지도 않았으며 그저 묵묵히 자신의 할 일만을 하는 여성이다.  반면 백설공주는 워낙 출중한 외모의 소유자인 데다 성격마저 밝아 언제나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정도로 인기에 관한 한 블랙홀과 진배 없었으며, 그녀의 욕심과 질투 또한 그에 비례해 남달랐다.



회사나 학교 등의 커뮤니티도 그렇지만, 사회 전체를 놓고 봐도 주류와 비주류는 확연하게 구분되며, 주류 사회는 백설공주와 같이 외모가 출중하거나 아니면 실력이 탁월하거나 그도 아니면 돈과 욕심 그리고 질투가 유독 많아 남들로부터 절대 지지 않으려는 전투력이 충만한 이들이 이끌어 간다.  목소리가 유독 큰 이들도 간혹 이 범주에 포함되는 경우가 있긴 하다.  물론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문제 따위는 별개 사안이다.

 

 

같은 축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잘 드러내지도 못하고 언제나 조용히 있기 마련인데, 그러다 보니 주류사회에 속한 이들에게 비주류들은 늘 먹잇감이 되고 만다.  학교에서의 왕따나 은따도 그렇거니와 직장 내에서의 직따 현상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개인들간 이뤄지는 현상보다 집단을 통해 빚어지는 행태가 더욱 잔인하다.  미키가 한 순간에 용의자로 몰리게 된 이유는 이렇듯 주변인들에 의해 그녀를 그녀와는 정반대 진영에 속해 있던 화려한 인기와 관심의 아이콘 '백설공주'에 대한 일종의 희생양으로 삼은 탓이 크다.  그만큼 미키가 만만하다는 방증이다.

 

물론 이러한 결과 뒤엔 유지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사실들이 SNS에 실시간 중계되고, 아울러 미키를 용의자로 인식되게끔 교묘하게 편집된 프로그램 영상 또한 한 몫 단단히한다.  이의 폐해를 말하고자 함이었겠으나 영화에서는 도입부부터 유지의 트위터 글로 도배되다시피 한다.  온통 트위터글로 도배된 스크린의 혼란스러움은 마치 진실과는 거리가 먼 사실을 진실인 양 실시간으로 퍼나르기하며 혼란을 야기하는 이들에게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설파했던 퍼거슨 전 감독의 일침을 재차 전달해 주는 느낌이다.

 

 

우리와는 정서가 전혀 다른 측면에 의해 빚어지는 듯한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은 둘째 치더라도 인터뷰하는 장면과 이를 편집하여 동영상으로 만든 화면을 수 차례 비추며 진실이 어떻게 호도될 수 있는가를 알리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으나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부분은 아쉽게 다가온다.  이 부분만 압축했더라도 굳이 두 시간 이상의 러닝타임을 찍을 이유는 딱히 없어 보인다.

 

미키의 어릴적 단짝이었던 유키, 그녀 역시 미키와 비슷한 성격인 탓에 사회 생활이 녹록지 않아 집안에만 박힌 채 생활하는 '히키코모리'이다.  학창시절 유일하게 자신을 받아 준 미키의 고운 심성을 기억하고 있던 유키는 창가에서의 촛불 신호를 통해 서로 간의 소통을 시도해 왔다.  이른바 왕따나 히키코모리 등의 비주류에 처해 있는 이들 역시 세상과의 소통을 간절히 바라지만 이들은 언제나 주류에 의해 따돌림을 당한 채 사회생활마저 녹록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이 영화는 결국 '백설공주'라는 화려한 한 여성의 살인사건을 기화로 주류에 의해 가려진 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그들에 대한 따뜻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여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감독  나카무라 요시히로

 

* 이미지 출처 : 다음(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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