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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아이즈> 큰 눈망울에 담긴 진실의 힘

새 날 2015. 2. 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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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된 얼굴에 마치 인형처럼 큰 눈을 가진 이 소녀의 그림이 다름아닌 '빅 아이즈'다.  1950년대와 60년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미술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빅 아이즈'는 인간과 동물의 눈을 비정상적일 만큼 커다란 눈(Big Eye)으로 묘사한 그림을 일컫는다. 

 

해당 그림을 그린 마가렛 킨은 1960년대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그녀의 작품은 디자인, 만화, 장난감 등 다양한 장르와 접목시켜 새로운 문화 상품들을 탄생하게 했고, 아울러 소장 가능토록 프린트하여 판매되는 등 예술 업계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이러한 실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여기서 더욱 주목되는 건 감독인 팀 버튼 역시 마가렛 킨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일종의 마가렛에 대한 헌정 작품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참고로 이 포스팅엔 스포일러가 포함됐을 수 있으니 읽는 분의 주의를 요하는 바다.



1958년, 남편과 이혼하고 딸과 단 둘만이 남게 된 마가렛(에이미 아담스),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그녀에겐 모든 일이 낯설고 어렵기만 하다.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대다수 여성들이 그러했지만, 마가렛 역시 가사일이 경력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미술을 전공했던 그녀는 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황에서 자신의 유일한 능력을 돈벌이에 이용키로 작정하고 휴일이면 공원 등지로 나가 초상화를 그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공원에서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곁에서 그림을 팔고 있던, 유독 말 주변이 뛰어난 한 남자가 눈에 띤다.  월터 킨(크리스토프 왈츠)이었다.  프랑스에 다녀온 뒤 주로 그곳의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라며 자신을 소개한 그는 그녀에게 호감을 드러낸다.  먹고 사는 일로 지쳐있던 마가렛에겐 그의 접근이 싫지 않은 눈치다.  그림을 매개로 급속도로 가까워진 그들,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월터 킨은 마가렛의 그림으로부터 무언가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영감을 느끼고, 이를 우연한 기회에 팔게 된다.  그런데 의외로 대중들로부터 엄청난 반향을 보이며 인기몰이를 하게 되자 더 큰 욕심이 생겼다.  월터는 마가렛에게 더욱 많은 작품을 요구한다.  그러던 어느날 마가렛은 월터가 자신의 그림을 판매할 때면 월터의 작품인 양 떠드는 모습을 보고선 그에게 왜 그랬냐며 채근한다.  하지만 월터의 그림 판매 수완은 워낙 대단하여 큰 돈을 벌어들이게 되자 그녀 또한 세상의 모든 사람과 심지어 딸마저도 속인 채 그와의 동업을 지속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마가렛 킨의 성공 이면엔 월터 킨의 공헌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마가렛의 작품은 그저 취미로 그려진 평범한 그림들 무리 속에서 조용히 먼지만 쌓여갔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월터의 뛰어난 말 주변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묘한 재주 그리고 미디어의 발달이 그녀의 그림과 결합하면서 이러한 시너지를 빚게 만든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의 포장 능력이 타고났다 한들 애초 자신이 그린 작품이 아니면서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대중을 속인 채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으니 결과적으로 그는 매우 파렴치한 사기꾼에 불과하다.  이 과정에서 마가렛의 잘못도 일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월터가 자신의 그림을 그의 것인 양 속이는 장면을 직접 목도했으면서도 돈이 얽힌 문제인 데다 그의 설득에 넘어가며 이를 제지하지 못한 채 결국 딸을 속여가면서까지 그와의 동업을 지속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당시 그녀는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엿보인다.  우선 여성의 사회 활동 참여가 백안시되던 사회 분위기 탓에 섣불리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몹시도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아울러 월터의 완력이 점차 협박으로 변질된 채 그녀를 더욱 옥죄어오던 환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월터의 사기 행각은 마가렛의 의지라기보다 성 차별적인 미국의 사회 분위기와 월터의 폭력이 맞물리면서 그녀를 더욱 억압하는 형태로 빛을 발하게 된 셈이다. 

 

 

미디어의 발달은 새로운 스타를 띄우거나 히트 상품을 곧잘 만들어내곤 한다.  여기엔 긍정적인 요소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때문에 월터의 수완과 결합되어 탄생한 가짜 '빅 아이즈'는 어쩌면 미디어가 만들어낸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기 행각을 일삼으며 아내로부터 '빅 아이즈'의 소유권마저 앗아가려던 월터 킨에게 우리가 돌을 던질 수 없다면 그 이유는 과연 무얼까?  아마도 비록 사소한 이득을 얻기 위한 행동이라 해도 일상 속에서 남을 속이거나 기만하는 경우가 우리에게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논문 대필이나 심지어 자기소개서를 대신 쓰게 하고, 또 학력을 속여가며 사회활동을 하는 등 자신을 속이거나 대중 그리고 사회 전체를 속이는, 크고 작은 일들은 우리 곁에서 늘상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테다. 

 

월터의 과장된 몸짓과 말투, 그리고 나중엔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분노가 폭발하여 주변인들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극단적인 모습은 그의 실체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장치다.  특히 마가렛과의 법정 다툼 장면은 한 편의 희극이 아닐 수 없을 정도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어이없어 절로 나오는 장탄식과 웃음을 참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배우들의 연기엔 군더더기 하나 없다.  연출력 역시 탁월하다.  미국의 5,60년대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쏠쏠한 재미도 있다.

 

시종일관 차분하면서 설득력있게 극을 진행해가는 묘미가 압권이다.  자극적인 요소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 하나 없이 관객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리는 감독의 치밀한 연출력은 그야말로 일품이 아닐 수 없다.  진실을 규명하고 자신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세상의 편견과 거짓에 맞서 지난하게 투쟁해왔던 마가렛,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감독  팀 버튼

 

* 이미지 출처 : 다음(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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