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새 날 2014. 12. 3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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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써내려가는 글엔 스포일러가 포함됐을 수 있으니 읽는 분의 주의를 요하는 바다. 

 

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너무 뻔하다.  일반적인 동양인의 신체 구조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탁월한 목소리를 타고난 배재철이라는 한 성악가가 유럽 오페라계에서 실력을 인정 받아 승승장구, 정상에 오르며 전성기를 맞이하던 찰나 갑작스레 찾아온 갑상선암 때문에 성대의 신경이 끊기고 목소리를 잃은 뒤, 각고의 노력 끝에 다시금 무대에 서게 된다는 이야기 구조다.  물론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무얼까?  이런 뻔한 스토리를 어떠한 방식으로, 또한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관건이 될 듯싶다.  그러다 보니 조건반사와도 같이 어떤 한 사람에게 시선이 고정된다.  다름아닌 일본에서 오페라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와다(이세야 유스케)였다.

 

 

어느날엔가 자신이 기획한 오페라에 출연할 테너를 물색할 요량으로 유럽 땅을 밟은 사와다, 우연히 배재철(유지태)의 공연을 관람하게 되고, 왠지 이 사람이면 모든 게 가능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던 터, 조심스레 그에게 접근한다.  사와다는 일본 사람 특유의 느낌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매우 예의바르며 깍듯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오페라의 본고장 유럽에서 한창 인기몰이 중이던 배재철에게는 오페라의 변방국가 일본 따위의 나라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사와다의 출연 제의는 일언지하에 거절되고 만다.  그런데 우연히 해당 오페라의 출연진 중 자신이 흠모하던 성악가가 배재철의 눈에 띠게 되고, 결국 어디론가 향하려던 차량을 돌려세워 사와다에게 출연할 것을 약속한다.  배재철과 사와다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와다는 자신이 직접 오페라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일본 굴지의 기획사 사장 밑에서 직원으로 일해왔던 터다.  돈만 밝히는 사장의 탐욕스러운 모습에 신물이 난 사와다는 결국 회사를 뛰쳐나와 독립한다.  그의 성품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에서의 공연을 위해 현지에 도착한 배재철은 다소 거만했다.  유럽 오페라계를 평정한 사람에겐 일본의 작은 시장이 보잘 것 없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하지만 사와다는 그런 배재철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에게 최상으로 응대한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와다의 태도 덕분에 다소 건방을 떨던 배재철 역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두 사람, 서로 주먹을 불끈쥐며 미래를 약속하는 사이가 된다. 



어느날 배재철에게 불현듯 닥쳐온 불행은 그의 모든 것을 잃게 했다.  성악가에게 있어 성대는 생명과도 같은 존재일 테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실의에 빠진 배재철에게 재기할 수 있도록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건 부인 이윤희(차예련)의 몫이었다.  그녀는 그를 다독여가며 한편으로는 성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백방으로 수소문한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시술법, '잇시키'...

 

간만에 오페라 출연 관계 때문에 배재철에게 연락을 취한 사와다는 그에게 닥친 비운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 대목에서 아마 보통사람들이었다면 겉으로는 희망 섞인 위로의 말을 건넸을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분명 '이제 배재철이는 끝났어' 라며 다시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을 법한데, 사와다 그는 달랐다.  배재철이 머물던 독일로 직접 날아와 그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진심어린 위로의 말을 건넨다.

 

 

배재철의 부인으로부터 잇시키시술법에 대해 전해들은 사와다, 그는 곧바로 일본으로 날아가 잇시키에 대한 수소문에 나서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사와다는 결국 잇시키 박사를 만나 그를 설득시킨 뒤 배재철에게 해당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사와다의 우정이 끝내 배재철의 목소리를 되찾게 했으나 배재철의 시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이유 때문에 다시금 좌절하는 배재철을 끝까지 믿고 그가 재기의 무대에 설 수 있게 만든 건 결국 사와다 이사람이었다. 

 

이 영화, 단언컨대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우정이란 반드시 친구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그러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친구 사이일수록 진정어린 우정을 찾아보기 힘든 게 요즘의 각박한 현실일 테다.  사업과 관련하여 서로 필요에 의해 만나게 됐고, 또 그를 통해 인연을 쌓아왔지만 한국과 일본이란 국경을 넘나드는 그들의 우정은, 외려 친구들과의 가볍기 그지없는 형태의 그것보다 훨씬 묵직하게 다가온다. 

 

 

사와다와의 인연이 아니었더라면 배재철의 재기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고, 혹여 그와의 인연이 있었다 한들 사와다가 작금의 흔한 세태처럼 돈벌이에만 눈이 먼 채 형식적인 거짓 관계를 유지했다면 힘겨운 역경을 이겨낸 이러한 감동 스토리는 애초에 만들어지지도 못했을 테다. 

 

바로 진정성이다.  목소리를 되찾게 한 오늘날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또한 두려움과 원망 때문에 차마 설 수 없었던 재기의 무대에 다시금 오를 수 있도록 만든 주인공이 바로 진정성이다.  이 영화가 무엇보다 더욱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사와다가 새로 고용한 신입직원 미사키(키타노 키이)의 발칙하거나 때로는 귀여운 행동을 보는 쏠쏠한 재미와 평소 보기 힘든 화려한 오페라의 공연 장면 및 성악가들의 뛰어난 성량 감상은 덤이다.

 

 

감독  김상만

 

* 이미지 출처 : 다음(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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