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재벌 가석방 위해 생계형사범 사면 들먹이나

새 날 2014. 12. 3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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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땅콩 리턴 사건으로 재벌의 횡포가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당사자인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마저 결국 사법처리 수순을 밟고 있는 와중에 재벌총수에 대한 사면 내지 가석방을 추진하는, 웃지 못할 일이 현재 대한민국 하늘 아래에서 공공연하게 펼쳐지고 있다. 

 

새누리당이 국민 대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기업인뿐 아니라 생계형 사범까지 포함한 사면과 가석방 단행을 박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단다.  앞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운을 띄운 바 있고 청와대가 이들의 주장에 대해 화답하듯 '법무부 장관의 고유 권한'이라며 공을 넘기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사실상 이는 대통령이 재벌 일가의 가석방을 용인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기자협회보

 

대통령이 결정하는 특별사면과는 달리 가석방은 형기의 3분의 1 이상 복역한 수감자를 조건부로 법무부장관의 권한 하에 석방하는 제도이기에 대통령의 입장에선 정치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사면 대신 가석방 카드를 꺼내든 대목으로부터는 어떡하든 재벌 총수만은 반드시 구해내겠노란 절실함이 묻어나온다. 

 

애초 재벌총수에 대한 사면을 노렸던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분위기 조성을 위해 연신 군불을 때왔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반응이 여전히 싸늘한 데다 잇단 반발에 부딪히게 되자 보다 노골적이면서 우회적인 방법으로 이를 추진하고 나선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대기업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한 사면권 행사는 더욱 엄격히 제한하겠노라 말한 바 있고 누구보다 법치주의를 강조해왔던 사람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 아니 애초 이러한 상황을 의도했던 바겠지만, 대통령의 사면이 아닌 법무부장관의 권한에 의해 이뤄지는 가석방이라고 우긴다면 뭐 그럴 수도 있다 치자.  그렇지만 국민들의 정서로 볼 때엔 가석방이나 사면이나 그 취지는 결국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오히려 비난을 피해가려는 꼼수로 와닿을 뿐이다. 

 

현행법상 가석방 심사는 형기의 3분의 1 이상 복역한 자를 대상으로 함이 분명 맞다.  하지만 법무부 통계상 이제껏 형기를 50%도 채우지 못한 상황에서 가석방된 사례는 없으며, 통상 7-80% 이상의 형기를 채워야 허용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현재 가석방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는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경우 48%의 형기에 그쳐 새누리당이 이를 무마하기 위해 일반인 생계형 사범 사면과 가석방 카드를 함께 들고 나온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쯤되면 집권세력의 재벌총수 구하기 작전이 가히 애가 닳을 정도라 표현해도 할 말이 없을 듯싶다.  새누리당이 애시당초 일반인 생계형 사범에 대한 사면과 가석방만을 언급하고 나섰더라면 그나마 일말의 진정성이라도 높이 치켜세워줬을 일이지만, 이조차 재벌 총수들의 가석방을 노리고 끄집어낸 발상이기에 국민대통합이라는 언급은 어차피 어불성설에 불과할 뿐, 예의 그 치졸함만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느낌이다.

 

정의당 서기호 의원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은 2013년 2월 4일 구속후 7월 4일까지 1년5개월간 복역하면서 무려 1천800번 가까이 면회를 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특히 일반면회 시간의 두배에, 신체 접촉마저 가능한 특별면회가 171회나 이뤄져 이미 복역 내내 특혜가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영어의 몸이라 한들 일반인들은 감히 엄두도 못낼 온갖 특혜가 부여되었기에 특별히 그의 부재가 기업의 경영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것이라 관측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국가경제 발전과 재벌 총수의 사면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재벌 총수가 없다고 하여 해당 기업의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고, 또한 기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글로벌 시대라 일컫는 이때에 그 기업은 이미 생존 가치가 없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혹여 총수가 경영 일선에 복귀한다 한들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기업은 구멍가게가 아닌 이상, 아니 근래엔 구멍가게마저도, 재벌 총수 개인이 운영하는 형태가 아닌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야 하는 게 일반적일 테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런 기업이 과연 국가경제 발전에 얼마나 이바지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이들 재벌 일가는 수백억 내지 수천억 원대의 배임 횡령이라는 중죄를 지은 죄인에 불과하다.  이들을 풀어주게 된다면 자신들 개인 잇속을 채우기 위해 범죄 행위를 저질러 회사를 곤경에 빠뜨리게 하고, 더 나아가 작금의 경제 불황에 단초를 제공한 장본인들에 대한 특혜를 제공해주겠노란 국가의 공식 선언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대한항공 땅콩리턴 사건으로 인해 가뜩이나 재벌에 대한 좋지 않은 시각이 팽배한 시점에서 이들을 가석방하게 된다면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극에 달할 것이란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될 테다.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가 주장해온 법치주의의 완성과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그 누구라 한들, 혹여 재벌 총수라 해도, 법에 의해 예외 없이 엄중히 처벌된다는 원칙을 이번 기회에 보여주어야 한다.  국민이 기대하는 대통령은 바로 이러한 모습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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