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간접 경험의 즐거움 539

뇌과학이 들려주는 삶의 성찰 '열두 발자국'

젊은 시절 사회의 변화를 이끌 만큼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어 청년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인물이 노년으로 접어든 뒤 느닷없이 정반대의 신념을 펴거나 행보를 드러내면서 더 없이 큰 실망감으로 다가왔던 사례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렇게 변한 것일까 하며 혀를 끌끌 차거나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내게 남아 있다. 아니 안타까움을 넘어 연민의 감정으로까지 이어지곤 했던 것 같다. 물론 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단순히 자신의 신념이나 사상이 바뀌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흔히들 보수화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유독 노년에 접어들면서 비슷한 현상이 잦아지는 걸로 봐서는 이를 단순히 신념의 변화로만 해석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들의 변화에는 모종의 공..

일그러진 욕망을 향한 통렬한 풍자극 '상류사회'

모 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장태준(박해일)은 근래 각종 미디어 매체에 자주 등장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여가던 와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상가 세입자들의 규탄 집회에 참석했다가 한 노인이 자신의 눈 앞에서 분신하는 모습을 포착하게 되고, 분초를 다퉈야 하는 급박한 사안임을 직감한 그가 분신노인에게 다가가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던져 구하면서 권력으로부터 눈도장을 제대로 찍히며 민국당 대표로부터 차기 총선 공천을 제안 받기에 이른다. 이러한 기회를 마다할 리 없는 그였다.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 장태준은 본격적인 정치인 몸 만들기에 돌입한다. 한편 그의 아내 오수연(수애)은 미래미술관의 부관장으로서 차기 관장이 되고픈 욕망을 결코 숨기지 않는, 능력이 출중한 데다가 꽤 강단이 있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현재..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세계 '고양이'

바스테트는 올해로 3살된 암컷 고양이다. 그맘때 고양이라면 으레 그러하듯이, 아울러 자신의 집사인 나탈리가 그러한 것처럼 바스테트는 자신의 외모가 무척 빼어나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자뻑 고양이다. 덕분에 웬만한 수컷 고양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바스테트에게는 여느 고양이들로부터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특기 하나가 있다. 마음만 먹으면 다른 종족과 기꺼이 소통이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던 참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바스테트의 잇따른 소통 시도가 영 신통치 않은 결과를 빚곤 하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바스테트 앞에 문득 나타난 의문의 수컷 고양이 피타고라스, 이 녀석은 다른 놈들과 확연히 달랐다. 샴 고양이 품종만이 갖는 특징 때문만은 아니다. 어딘가 모르게 기품이 느껴지는 데다가 결코 가볍지 않은 행동..

규격을 벗어난 삶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80년대는 엄혹했다.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무력으로 처참히 짓밟고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군사정권의 서슬퍼런 압제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당시 대학가의 학생들은 학생회와 동아리 등을 중심으로 이른바 불온서적이라 불리는 책을 서로 몰래 돌려 읽으면서 감춰진 진실에 대한 갈증을 일부나마 해소하곤 했다. 책 한 권이 지닌 힘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진실에 비로소 눈을 뜨고 이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선 학생들은 치솟는 분노에 어쩔 줄 몰라해했다. 불의에 맞서기 위해 과감히 거리로 뛰쳐나왔으며, 이들의 피끓는 에너지가 한데 모여 결국 오늘날 민주화의 발판을 마련하는 결정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최루탄 가스로 뒤덮여 온통 희뿌옇던, 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게 했던 불온한 대기, 그리고 순진..

사랑에 대한 집요한 탐사 '사랑의 생애'

형배와 선희는 같은 대학 같은 동아리 회원으로서 이른바 캠퍼스 커플이다. 형배가 선희보다 두 살 많다. 두 사람은 대개의 커플이 그러하듯이 수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술집에서 술과 함께 밤을 지새우곤 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사랑 역시 차츰 무르익어갔다. 하지만 선희가 그를 사랑한다며 한 발짝 다가서자 정작 형배는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어" 라며 두 발짝 뒤로 물러서고 만다. 두 사람은 그렇게 헤어졌다. 그로부터 정확히 2년 10개월이 흐른 뒤, 두 사람은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3년에 가까운 시간의 흐름은 많은 것들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선희도 그랬다. 어이없게 헤어졌던 당시와 비교해볼 때 많은 부..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말 그릇

집 바로 앞에 피씨방이 새로 오픈했다. 200석에 달하는 거대 규모다. 코인 노래방도 함께 운영하는 형태로 보아 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것임이 분명했다. 우려스러웠다. 무리 지어 다니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골목 안쪽까지 밀려 들어와 조용하던 주택가를 혼돈의 아비규환으로 몰아넣을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적게는 대여섯 명에서 많게는 십여 명의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담배를 피우고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댔다. 이제 갓 중학생이 된 듯한 앳된 아이들이 입에 담배를 문 채 거리낌 없이 골목을 누비는 모습은 내겐 무척 생경했다. 흡연 청소년이 아무리 많이 늘어났다 한들 적어도 자신들의 행위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사실만큼은 아는듯 으슥한 골목에 숨어 피우던 녀석들이었건만, 어느새 주변..

신경외과 의사가 선보이는 깜짝 마술쇼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짐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고작 12살에 불과한 소년 혼자 감내하기에는 무척 버거운 성질의 것이었다. 아빠는 특별한 직업 없이 술만 먹었다 하면 행패를 일삼는 등 전형적인 술주정뱅이에, 엄마는 아빠의 영향 탓인지 우울증에 시달리며 약물에 의지한 채 오로지 집안에만 콕 박혀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환자였다. 이들 가정은 정부의 지원 없이는 생계가 애초 불가능할 정도로 가난에 찌들려 있던 터다. 이 즈음 짐은 마술에 매료돼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놓여 있는데 반해 마술만은 자신이 지닌 기술의 난이도에 따라 관객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짐은 동네에 마술가게가 있음을 알게 된다. 자석에 이끌리듯 그의 발길은 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마술가..

누가 더 진짜 같은 가짜인가 '게임의 이름은 유괴'

광고 기획사 직원 사쿠마가 기획한 회심의 프로젝트가 광고주인 자동차회사 가쓰라기 부사장에 의해 전격 중단되는 사태가 빚어진다. 덕분에 사쿠마를 중심으로 한 해당 프로젝트 팀은 해체의 비운을 겪게 되고, 승승장구하던 사쿠마 역시 입사 이래 최대의 위기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동안 피말리는 경쟁 속에서도 결코 패배를 몰랐던 그였기에 가쓰라기가 안긴 억울함과 모멸감은 그의 감정을 극단의 처지로 몰아가고도 남을 정도다. 일이 좀처럼 손에 잡힐 리가 만무했다. 고조되어가던 사쿠마의 감정은 점차 가쓰라기 부사장 개인을 향하게 되고, 결국 그의 집으로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따져 묻기로 마음을 굳히며 이를 실행에 옮기게 된다. 이처럼 그의 분노 게이지는 점차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에 이끌린 신체의 움직임..

아웃사이더에 대한 관심 촉발시키는 책 '한 시간만 그 방에'

비에른이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한 지 2주가 훌쩍 지났다. 그가 정확히 무슨 직무를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직장이 관공서임은 분명하다. 비에른은 이곳의 한 사무실에 소속돼 있다. 그는 스스로를 대단히 유능한 직원이라 자평한다. 아울러 옆 직원 호칸처럼 일하는 척만 하는 사람을 경멸하고 있으며, 그 맞은편에 앉은 안처럼 여기저기 나서기 좋아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부류의 사람들 역시 무척 질색하는 입장이다. 그는 그만의 주도면밀한 작업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업무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동료들과 불필요하게 어울리는 일 따위는 일절 회피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사무실이 위치한 4층 엘리베이터와 화장실 사이에 작은 방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방 가운데엔 책상 하나가 위치해 있고, 책상 ..

본격 술을 부르는 책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출판사에 근무하는 미야코, 신기하게도 그녀의 주변에는 술자리 기회가 널려 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동료들과 퇴근 후 함께하는 술자리부터 거래처나 직무상 엮일 수밖에 없는 작가들과도 늘 술은 일의 매개 내지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녀가 진정한 술꾼으로서의 면모를 타고 난 건 일단 술자리가 시작되면 한 종류의 술로 그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다른 종류의 술로 갈아탄다는 점일 테다. 물론 그에 따라 술집도 계속해서 옮겨다닌다. 대단한 주당이다. 게다가 그렇게 퍼부어대도 숙취로 고생하거나 다음날까지 시름시름 앓는 법이란 일절 없다. 진정 부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아주 간혹 필름이 끊겨 일정 시간대의 기록이 싹 사라진 적이 있거나 함께 마시던 동료의 신체에 선명한 멍자국 따위를 남기는 경우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