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신의 한 수> '우는 남자'엔 없던 '아저씨'가 보인다

새 날 2014. 7. 1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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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저씨'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던 걸로 기억한다.  일종의 신드롬이었다.  아직도 회자될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배우 원빈이 너무 잘 생기고 멋진 측면을 절대 무시 못한다.  어쨌거나 '아저씨' 이후 우린 비슷한 액션 장르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이와 반드시 비교하는 습관이 생겼다.  얼마 전 개봉했던 장동건 주연의 '우는 남자'가 주목을 받으며 기대를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이의 연장선이다.

 

바로 '아저씨'의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정범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장동건이란, 원빈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배우가 출연했기 때문이었을 테다.  액션 장르인 '신의 한 수', 어쩔 수 없이 '우는 남자'와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엔 원빈, 장동건과는 성향이 전혀 다른 배우 정우성이다.  과연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는 남자'에서 '아저씨'의 흔적을 발견 못해 몹시도 실망을 느낀 분이라면 '신의 한 수'를 통해 안구 정화에 나서 보시라 권하고 싶다. 

 


프로 바둑기사인 태석(정우성)은 어느날 형의 부탁을 받고 바둑을 이용한 도박 행위를 돕게 된다.  물론 태석은 전혀 원치 않는 일이었지만, 엉겹결에 함께 휩쓸리며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다.  형이 내기 바둑을 두던 그곳은 겉으로 볼 땐 허름한 일반 기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바둑 한 판에 돈과 목숨이 오고 가는 살벌한 현장이었다. 

 


형의 내기 바둑을 원격으로 돕던 태석, 연결된 초소형 통신장치가 궂은 날씨 탓에 갑자기 혼선을 빚게 되니 형은 갈팡질팡하다가 그만 패착을 두게 된다.  그와 동시에 그의 정체가 탄로나며 살수(이범수)가 운영하는 사기 바둑 조직에 의해 형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태석 역시 함께 칼을 맞게되나 다행히 목숨은 부지한다.



형의 살인 누명을 쓴 채 교도소에 입감된 태석, 그곳에서 형의 복수를 위해 몸을 단련시키고 바둑 실력 또한 더욱 갈고 닦는다.  출소 후 살수 일당과 맞설 전문가들을 하나 둘 직접 찾아다니며 영입하기에 이른 태석, 드디어 살수의 조직 한복판으로 한 발 한 발 다가서며 복수를 시작하는데..
 

 

잔인하기로 치자면 '우는 남자' 못지 않다.  온통 피가 낭자하다.  살수가 운영하는 조직의 잔혹성을 묘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연출이었으리라.  '우는 남자'에서의 맛깔스런 조직원들의 연기처럼 이 영화에서도 살수 조직원들의 연기가 영화의 재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확실히 명품 조연들의 출연이 없었더라면 이런 류의 영화, 많이 밋밋했을 법한데 이들이 살리고 있는 셈이다.

 


정우성의 액션은 화려하며 현란하기까지 했다.  마치 '아저씨'의 그것을 보는 듯했다.  태석의 역할이 정우성에겐 잘 맞는 옷처럼 느껴졌다.  진중한 프로바둑기사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변모해 가는 그의 연기 속에선 '우는 남자' 장동건의 어색함을 찾아 볼 수 없다.  장동건이 왜 울어야 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억지스러운 설정과 무게만 잡다가 끝난 연기력 덕분에 재미가 반감되었다면 이 영화에선 적어도 그러한 요소는 없다는 의미이다.  '우는 남자'가 이 영화와 비교하여 필패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바둑이 주요 소재이며 그 흔적들이 영화 곳곳에서 묻어나오지만,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바둑이 아닌 도박을 소재로 한 영화다.  바둑을 염두에 두고 이 영화를 선택하면 절대로 후회할 테다.  내기 도박 세계에서 정정당당한 대결이란 애초 어불성설이다.  몸에 지닌 초소형 통신기기를 이용, 원격으로 도움을 받아 숨은 진짜 고수들의 대리전으로 치러지는 가짜 바둑 대국은 결국 허수아비들의 허상일 뿐, 이 세계에선 칼과 몸이 부딪는 잔인한 몸싸움만이 진정한 대결이라 할 수 있을 테다.

 


고수에게 있어 세상은 한 없이 편한 놀이터와 같지만, 하수에겐 지옥과도 같은 곳이란 주님(안성기)의 주옥 같은 대사 한 꼭지가 뇌리에 콕 박힌다.  안성기 씨는 어째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멋져 보이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우리 삶에 있어 진정한 '신의 한 수'란 무엇인지, 관객들에게 숙제로 남겨 놓았으면 좋을 법했는데, 훈수를 두는 바람에 김이 빠져 내심 많이 아쉬웠다.  왠지 마지막 장면은 후속편을 암시하는 듯했다.

 


감독  조범구

 

* 이미지출처 : 네이버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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