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SBS '런닝맨' 고려대 일베 로고, 과연 실수일까?

새 날 2014. 3.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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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 방송3사 중 하나인 SBS가 또 다시 대형사고를 쳤다.  2일 방영된 SBS '런닝맨'에서 유재석과 호흡을 맞춘 고려대학교 팀을 소개하며, 고려대학교의 엠블럼 대신 '일베'를 형상화한 가짜 고려대학교 로고가 등장한 것이다. 

 

ⓒ일간스포츠

 

SBS는 지난해에 이미 연세대학교 로고를 이른바 '일베 대학교' 로고로 둔갑시킨 채 방송에 내보내 방통위로부터 중징계 처분을 받은 바 있다.  물론 그에 앞선 지난해 8월, 8시 메인뉴스에서도 '고 노무현 대통령 비하' 일베 이미지를 사용하여 진작부터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쯤되면 실수라기보다 고의성이 짙다.  SBS 측은 비슷한 사례가 발생할 때마다 담당자 내지 외주 업체 직원의 단순 실수에 의한 해프닝이었노라며, 고의성에 대한 의혹에 대해 완강하게 부인해 왔다.  심지어 그래픽 작업을 위한 구글 등 인터넷 검색 과정에서 드러난 해당 직원의 무지 탓이었다며 철저하게 개인의 실수로 몰아가는 패턴을 반복해오고 있기도 하다. 

 

이는 마치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가 지난 대선 때 벌여왔던 대규모의 선거 개입 댓글과 트윗의 정황에 대한 해명에서 '개인의 일탈'에 의한 결과물이었노라며 발뼘하던 행태와 꼭 빼닮아 있었다.

 

 

일베의 장난질에 의한 폐해는 일상 속 곳곳에서 발현되고 있다.  위키백과나 엔하위키 등과 같이 네티즌들이 직접 편집 가능한 사이트 내에 일베 회원들이 장난 삼아 만들어놓은 이미지를 업로드해놓은 경우가 잦아지며, 구글 검색창에서 특정 대학 검색 시 조작된 로고가 실시간으로 검색되는 경우가 빈번해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고려대학교 로고의 경우 구글 검색을 통해 얻어낸 이미지였노란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은 전혀 통하지 않을 듯싶다.  구글 검색창에서 '고려대학교 로고'와 '고려대 로고'로 직접 검색해본 결과 이번 방송에서 사용된 이미지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이번 일베 고려대 가짜 로고는 속된 표현으로 '신상'에 가깝다는 의미이다.  이제까지 알려진 일베에 의해 훼손된 고려대 로고는 다름아닌,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이미지를 호랑이와 교묘하게 결합시킨 엠블럼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버전인 셈이다.

 

때문에 '신상' 고려대 가짜 로고에 대해 예전처럼 직원의 무지와 인터넷 검색 과정을 통해 이뤄졌다는 변명은 어림 없는 일일 듯싶다.  SBS는 2일 해당 프로그램 제작업체의 작업 과정에서의 실수를 인정하며 고려대 측에 사과를 표해 왔지만, 이러한 연유로 인해 실수라는 SBS의 표현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여전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더욱 잦아지는 일베 관련 방송사고에 대해 시청자들의 감각이 점차 무뎌져가는 현상이다.  이를 통해 일베를 모르는 이들에게조차 일베가 추구하는 선정적 일탈 사상이, 가장 접근성이 뛰어나며 대중적인 미디어 매체 중 하나인 TV를 통해 안방에까지 자연스레 스며들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첫 사례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발전하며 많은 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고, 아울러 성토와 비난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비슷한 사례가 여러 방송국에 걸쳐 수차례 반복 발생하면서 상대적인 관심도가 떨어져 둔감해진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베는 청소년에 유해한 정보가 그득함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지 않은 탓에 청소년들의 접근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사이트다.  일베에 빠져든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신적으로 덜 여문 청소년들마저 일베만의 문화와 사상에 심취, 재미삼아 자극적인 소재들을 단순 퍼나르기하거나 흉내내는 일이 흔해져가며, 일베만의 저속한 문화와 용어 사용은 이제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있다.  여기에 방송사들마저 일조하며 사회 전체가 저들의 배설물에 의해 서서히 오염돼가고 있는 중이다.

 

여러 정황상 이번 사태는 예전처럼 검색 과정에서 이뤄진 단순한 실수라고 단정짓기가 쉽지 않다.  비단 이번 일 뿐만이 아니다.  파급 효과가 매우 큰 '사회적 공기'로서의 공중파 TV 방송사가 이렇듯 무책임한 실수를 수 회에 걸쳐 반복한다는 건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결코 참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결국 반복된 실수는 더 이상 실수라 할 수가 없다.  고의성이 다분하다고 해야 맞겠다.  때문에 무엇보다 악의에 의한 의도적인 행위였는지의 여부를 철저하게 가려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듯싶다. 

 

저속한 일베 류의 문화가 자신들의 둥지를 떠나 일상 속으로 자꾸만 침투해 들어오려는 현상, 방송사가 이를 막지 못할 망정 방조하거나 외려 도와주는 우를 범해선 절대로 안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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