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석촌호수 위 거대 컴패니언의 호소 "쉬고 싶다"

새 날 2018. 7. 22.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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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실 석촌호수 위에 거대한 인형 하나가 누워 있습니다. 범상치 않은 모습입니다.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 카우스의 작품입니다. 이 인형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 그리고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더군요. 하지만 누워 있는 거대 인형 '컴패니언'의 모습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왜 휴식을 취하고 있음에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까요? 호수 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본다지만, 정작 눈은 X자의 형태로 하늘을 바라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휴식을 취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왠지 여유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일보


제 눈에는 오히려 번아웃증후군에 빠진, 지친 현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인형 전체를 휘감고 있는 회색톤의 칙칙한 색감 하며, X자 모양의 눈, 그리고 해골 형상의 얼굴은 여유와 휴식이 본래 갖고 있을 법한 어감과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지칠 대로 지쳐 완전히 탈진해버린, 현대인의 본 모습을 형상화한 듯합니다.


ⓒ한국일보


특히 거리상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의 뷰는, 그러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롯데월드타워의 세련된 자태 아래에 누운 컴패니언의 모습은, 자발적 휴식을 취한다기보다는 흡사 너무도 빠르고 가파르기만 한 이 세상의 변화를 좇다가 그만 자체 소진되어버린 현대인을 풍자하기라도 하는 양 피로감에 절어 있는 모습입니다. 이제는 쉬고 싶다며 아예 탈진해버린 것 같습니다.


어마어마한 높이의 뾰족한 형상의 롯데월드타워는 지금 이 시각에도 숨가쁘게 변모해가는 가속화시대를 상징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아울러 석촌호수 위에 애처로이 떠 있는 컴패니언은 그 가속화시대를 좇다가 번아웃 증후군에 빠진, 완전히 탈진해버린 현대인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정보화시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시시각각 쏟아지는 각종 뉴스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무언가 부족함이 느껴지는가 봅니다. 포털 사이트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더 좋은 소식은 없는지, 그리고 유익한 정보, 아니 더욱 자극적인 건 없는지 눈이 붉게 충혈될 때까지 손가락을 계속해서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곤 합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늘 온라인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하며, 누군가와 끊임없이 접속하고 있어야 마음이 놓입니다. 하지만 신체도 피로가 누적되면 몸살을 통해 신호를 보내 오듯이 무엇이든 과도하면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넘쳐나는 정보는 과부하로 우리를 지치게 하기 십상이고, 온라인 관계맺기의 집착은 소통 과잉 현상을 빚게 하고 있습니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합니다.

기술의 발달은 인간이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을 간소화시켰습니다.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일정 부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인공지능의 도입은 앞으로 이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전망케 합니다. 기술의 진보는 이렇듯 왠지 늘 부족하기만 한 우리의 시간을 대폭 늘려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입니다. 현실은 그와는 되레 딴판이기 때문입니다. 기술 발달 이전이나 지금이나 시간 부족에 허덕이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뭐가 그리도 바쁜지 모두들 시도 때도 없이 여전히 허둥거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시간을 더욱 세분화해놓아 그의 노예로 전락한 기분마저 들게 합니다.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강박관념 때문에 시간 계획을 나노세컨드 단위까지 세세하게 짜놓은 채 이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이기 일쑤이니 말입니다.

우리의 욕망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습니다.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멋진 신차를 구입하고 평수 넓은 새집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만족은 아주 잠시일 뿐, 더 큰 욕망 앞에서 늘 허기를 느끼기 일쑤입니다. 새로운 휴대폰을 장만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나은 기종이 출시되고, 일순간 기존의 것은 오징어로 전락, 또 다시 새 제품 구입을 위한 명분쌓기에 돌입하게 됩니다.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 기술의 발달, 기업의 이해, 그리고 인간의 욕심이 한데 맞물리면서 이러한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렇듯 욕망은 그 끝이 어디쯤인지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누군가와 늘 비교하면서 보다 높은 곳을 향해 쉼 없이 달리느라 우리는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어느덧 남들이 해봤다는 경험과 체험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중압감에 짓눌려 있기 일쑤입니다. 앞서기는커녕 문득 언젠가는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옵니다. 그럴수록 더욱 헛헛한 욕망에 매달리며, 무언가를 찾기 위한 정보의 홍수 속을 헤매거나 다른 이들의 뒤꽁무니를 쫓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늘 부족한 시간 탓에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우리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있습니다.


빠른 변화를 뒤쫓는 일만으로도 숨이 가쁜 세상입니다. 격한 운동 뒤엔 으레 호흡이 가빠지듯이 우리의 삶에도 쉼이 절실합니다. 혹시 진흙탕물을 가만히 놓아둬 본 적이 있으신가요? 진흙 등 부유물들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원래의 맑은 물로 되돌아오지 않던가요? 신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복잡한 머리와 지친 몸도 이 쉼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여유를 되찾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때의 쉼이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거창한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비단 해외여행을 가거나 멋진 호텔 등에서 한껏 여유를 만끽하는 등의 행위 따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멍때림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자신의 모든 생각과 짐을 내려놓는 행위가 진정한 쉼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진흙탕물을 가만히 놓아두는 것만으로 더러웠던 물이 깨끗이 정화되듯이 우리의 몸과 마음 또한 가만히 놓아둔 채 각종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잠깐 동안만이라도 벗어나 있음으로써 재충전이 가능해지며 행복감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운이 좋으면 참다운 나와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컴패니언은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거나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온, 정신 없이 바빠 과부하가 걸린 채 어쩔 수 없이 가속화시대를 누벼야 하는 우리의 일상에 잠시 동안만이라도 쉼이 필요함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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