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삶의 변화 의지 담긴 직장인 신조어

새 날 2017. 12. 5.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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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 해도 어느새 달력 한 장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전광석화와 같이 빠른 세월의 흐름은 어느 누구에게든 속수무책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올 한 해도 모두가 고생하셨습니다만, 그 가운데서도 왠지 직장인들의 노고에 가장 눈길이 꽂힙니다. 왜일까요? 그들이 만들어낸 재기발랄한 신조어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들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퇴준생', 이는 2017년을 관통하는, 직장인들이 공감했던 대표 신조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취업준비생'을 취준생이라고 부르듯이 이는 ‘퇴사준비생’을 줄여 부르는 말입니다. 산업화 시대에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통용됐고, 모두가 그렇게 한 직장에서 '회사 인간'이 되기를 고대했습니다. 왠지 그렇게 살아야만 성공하는 삶 같았습니다. 시대가 변모하고 있음에도 기성세대들의 머릿속엔 여전히 이러한 방식만이 성공한 삶이라는 인식이 깊숙이 박혀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회사 인간이란 사실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갑갑하기만 합니다. 


ⓒ중앙일보


회사 인간은 삶의 많은 부분이 회사로 기울어져 있는 까닭에 아침부터 밤까지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며, 직장에 대한 소속감이 무척 강해 한 번 회사에 입사하는 경우 은퇴하는 그날까지 오로지 한 회사에만 충성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정년이 되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는 방식의 삶을 결코 원치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안타깝게도 이제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게 현실이지만 말입니다. 


일부 청년들은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자기 스스로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려고 합니다. 더 이상 회사가 개인의 삶을 책임져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흥미나 가치관에 부합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곳을 찾아 언제든 회사를 떠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퇴사는 개인적인 불만이나 충동에 의해 무작정 던지는 사표와는 그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여전히 회사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차근차근 퇴사를 준비하는, 주도면밀한 사람들이 바로 퇴준생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삶의 양태는 미래에 자신의 삶을 저당 잡히지 않은 채 오롯이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를 즐기고자 하는 '욜로' '탕진잼' 현상과 아주 가까이 맞닿아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퇴준생이 무작정 사표를 던지는 게 아니라 회사를 다니면서 차근차근 준비하여 원하는 방식의 삶을 실현시키고자 퇴사를 준비하는 것처럼 욜로족 또한 무모하게 미래를 내팽개치고 현재를 즐기기 위해 마구잡이로 소비하는 게 아닌, 가능한 영역에서는 최대한 절약하면서 자신의 관심 분야만큼은 과감히 투자하는 합리적인 소비 성향을 띠고 있습니다. 


한편 SNS상에서 유독 인기를 끌었던 유행어들이 몇가지 눈에 밟히는데요.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걸릴 수밖에 없다는 직업병 '넵병'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아울러 일종의 말장난이나 아재 개그와도 같은 '일하기싫어증'에는 그들만의 말 못할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근래 스마트폰 메신저를 활용하는 업무 공유와 지시가 잇따르다 보니 알겠노라는 답변 하나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상당한 고충이 뒤따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누군가가 그럴 듯한 의미로 재해석해놓은 트윗은 얼마 전 온라인상에서 폭발적인 공감을 불러왔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네'로 하면 너무 건조해 보이고, '넹'으로 하면 지나치게 가벼워 보이지만, '넵'은 건조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데다가 무언가 확실한 뉘앙스를 남길 수 있기에 가장 적절하다는, 한편으로는 다소 억지 같지만, 알고 보면 누구나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할 만큼 폭풍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또한 말을 잃은 상태인 '실어'와 일을 하기 싫다는 '싫어'를 절묘하게 융합하여 묘사한 ‘일하기 싫어증’은 직장에서 일에 치여 말이 잘 안 나오는 상태인 데다가 그냥 다른 사람의 간섭 없이 혼자 있고 싶어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직장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는 아마 야근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야근을 해야 할 것 같은 안타까운 처지를 그들은 '야근각'이라는 재치있는 형태로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을 특별한 의미 없이 나열하거나 자음만을 사용하여 묘사하는 ‘급식체’가 유행하고 있는 가운데, 급여를 받는 사람들, 즉 직장인이 쓰는 말투인 ‘급여체’가 직장인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를테면 전무님을 'JMN', 상무님을 'SMN'으로 표현하는 등 상사의 계급과 관련된 호칭을 소리 나는 대로 옮긴 뒤 영문자 이니셜로 바꿔 쓰는 경우를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일각에서는 언어 사용에 혼란을 가져온다거나 다른 계층과의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를 대표하는 직장인들의 신조어나 급여체 등의 유행 이면에는 젊은 세대들의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치열함과 삶의 본질을 바꿔보려는 꿈틀거림, 아울러 직장 생활을 통해 누구나 느끼게 되는 고단함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오고 있습니다. 이 땅의 직장인들 모두를 응원합니다. 올 한 해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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