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무인점포 증가가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고요?

새 날 2017. 12. 3. 14:54
반응형

4차산업혁명은 현재진행형이며,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모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AI와 핀테크, 정보통신기술 등이 융합, 진화를 거듭하면서 사람이 현재 몸 담고 있는 많은 일들을 기계가 대체할 것으로 점쳐진다. 다수의 직업이 사라지리라는 전망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 코앞에 닥친 현실이다. 


이를테면 자율주행차량을 꼽을 수 있다. 수년 내에 상용화될 것으로 보이는 이 기술은 운전대를 기계에 넘겨줌으로써 사람을 운전이라는 노동 행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해준다.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자율비행의 시대도 성큼 다가오고 있다. 두바이에서는 도심 위를 나는 무인 비행택시 시운전이 성공을 거두었으며, 미 항공우주국(NASA)도 자율비행택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하거나 음식을 주문하고 계산할 때도 굳이 점원의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을 듯싶다. 무인점포는 가까운 미래에 가장 보편적인 상점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을 필두로 월마트 그리고 일본의 유통업체 로손 등 해외 유수의 기업들이 앞다퉈 AI와 빅데이터를 결합한 무인점포를 선보이고 있다. 



의외로 중국의 움직임이 빠르다. 무인점포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중국에 설립된 무인편의점 전문업체만 50여 개에 달한단다. 우리나라도 최근 이와 같은 흐름에 동참했다. 유통업계에 무인화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롯데가 업계 최초로 무인편의점을 선보인 데 이어 신세계도 시동을 걸었다. 카페나 음식점 그리고 도시락 전문점 등도 무인점포 형태로 대체되고 있다. 이렇듯 기업이 그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더 많은 이윤을 남기고자 하는 DNA를 버리지 않는 이상 무인점포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변화 가운데 하나다. 


최근 무인점포의 증가세를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 탓에 빚어진 결과물이라며, 이를 선전하고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간파된다. 흡사 물 만난 고기 같다.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바람에 높아진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이 스스로 무인점포를 찾게 된 결과물로 이를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무인점포 증가세를 보도하는 언론의 논조 다수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가 우리 생활 속으로 밀착해 들어오는 이상 무인점포는 피해갈 수 없는 시대적 조류이자 대세이다. 무인 카페를 창업한 모 업체측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서도 최근 언론이 어떠한 의도로 관련 문제를 바라보고 이에 접근하고 있는지 그 시각의 일단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사회적 변화를 고려해 창업했다기 보다는 커피를 저렴한 가격에 들여오겠다는 개념에서 시작한 것이고, 우연찮게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진 것 뿐이다." 


그렇다. 이게 바로 정답이다. 무인점포 증가와 최저임금 인상은 시기적으로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일 뿐, 이를 서로 엮는 건 불순한 시도로 읽힌다.


무인점포의 증가가 최저임금의 인상 때문이라는 논조의 기사가 늘고 있다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 6470원보다 16.4% 인상한 7530원으로 결정했다. 과거에 비해 전향적인 결과물임이 분명하다. OECD의 실질 최저임금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최저임금은 2000년 2.44달러에서 지난해 5.76달러로 16년간 3.32달러 증가했다. 비교가능한 30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하지만 이렇듯 높은 증가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순위는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2000년 19위에서 2016년 16위로 세 계단 오르는데 그친다. 전체 1위를 기록할 만큼 평균 증가율은 독보적이나 정작 임금의 순위에는 큰 변동이 없는 셈이다. 이는 우리의 최저임금이 여타의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을 의미하므로 내년도 최저임금의 인상폭이 지나치게 높다는 주장은 사실상 설득력을 떨어뜨리게 하는 요소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은 여전히 높다. OECD 조사 결과 2015년 우리나라 여성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37.6%로 OECD 1위로 집계됐다. 남녀를 통합한 저임금 비율은 23.5%로 OECD 4위였다. 최저임금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러한 계층의 소득을 적정수준으로 올려주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주자는 데 있다. 



물론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각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관련 전문가들이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소상공인들의 충격을 완화하고 이들의 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도 다름 아닌 이 지점에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최저임금제가 정착될 경우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실업률이 감소하는 등 노동시장을 변화시키는 구조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한다. 독일의 사례를 통해서다. 


독일은 2015년부터 시간당 8.5유로(약 1만1000원)의 최저임금제를 시행한 뒤 가계 수입과 구매 욕구가 모두 증가, 소비성향이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단다. 일자리 역시 최저임금 도입 이후 한계 직업은 사라지고 5만 개 이상의 정규직 일자리가 생겨났다고 한다. 실업률에도 변화의 움직임은 감지된다. 1년 전에 비해 0.6%포인트 하락, 유럽연합 내에서 가장 낮았다. 


우리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남성과 여성 등 계층별 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이렇듯 사회의 안정성을 해칠 개연성이 있는 심각한 양극화와 저성장 기조는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일정 부분 상쇄시키거나 완화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노동자는 생산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가계 소비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가계 소득이 증가할 경우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내수시장은 점차 살아날 것이며, 이는 다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선순환이 되게 하는 등 일반 서민 계층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더불어 경제 전체를 끌어 올리는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언론은 기술 진보에 의한 노동력 대체 현상을 최저임금 인상의 부당성을 설파하는 도구로 활용하지 말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