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240번 버스 사건이 주는 교훈

새 날 2017. 9. 1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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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가득 들어찬 버스, 모 정류장에 정차한 후 사람들을 하차시킨다. 그런데 엄마와 함께 탄 것으로 알려진 한 아이가 이곳에서 나홀로 하차한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아이를 따라 내리지 못한다. 버스 내부에 사람들이 너무 많은 탓이다. 아이 엄마는 자신도 하차할 수 있게 해달라며 기사에게 호소한다. 하지만 버스는 이미 가운데 차선 깊숙이 진입한 뒤였다. 기사는 버스가 이미 4차로 도로의 3차로로 들어선 터라 안전을 고려, 차를 계속 몰아 다음 정류장에서 아이 엄마를 하차시킨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은 목격자를 자청한 네티즌에 의해 사실과 달리 대중들에게 왜곡된 채 알려졌고, 이는 한 언론사가 “버스기사가 욕설을 했다”, “아이가 4살가량이었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사실까지 덧붙이며 그대로 보도하면서 일파만파 확산됐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른바 '240번 기사의 만행(?)'이 퍼나르기되면서 빠른 속도로 전파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사실 여부와는 관계 없이 이번 사건의 소재 자체가 네티즌들의 먹잇감(?)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4살가량의 어린 아이가 등장하고 기사가 엄마의 요청을 묵살한 데다가 욕설까지 퍼부었다고 하니 말이다. 해당 내용은 SNS라는 막강한 도구를 이용, IT강국으로서의 자존심인 대한민국 통신망을 타고 삽시간에 번져갔다. 


온라인 공간이 이들의 비난과 욕설로 온통 난리가 난 것이다. 기사를 성토하는 글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240번 버스 기사는 하루아침에 천하의 몹쓸 놈으로 둔갑됐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관련한 서울시의 자체 조사 결과 240번 버스 기사는 운수사업법과 도로교통법, 버스 운영 매뉴얼을 잘 준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CCTV 확인 결과 욕설도 하지 않았으며, 4살가량으로 알려진 아이는 7세 아동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를 향해 들끓던 네티즌들의 비난 여론은 반전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어느덧 아이 어머니 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맘충'이라는 표현마저 등장한 것이다. 비슷한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네티즌들은 적당한 사냥감을 고르고 공명심에 불탄 채 SNS를 이용한 마녀사냥을 펼치곤 한다. 임신한 배를 식당 종업원에게 걷어차였다는 거짓 주장으로 식당을 폐업에까지 이르게 하여 사회 전체를 들썩이게 했던 이른바 '채선당 사건'은 그의 좋은 사례다. 


사건소재가 극적일수록 네티즌들의 반응은 더욱 달아오른다. 이 과정에서 사실 여부의 확인과 사건 당사자의 개인정보 및 인권 보호 따위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이다. 자극을 좇으며 누군가로부터 인정 받고 싶어하는 네티즌들의 욕구와 성향은 앞뒤 가리지 않고 알려진 사실을 퍼나르기 바쁘다. 사건은 과대포장되고 대중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온라인 공간의 특성상 근래 비슷한 사례가 잦아지면서 일부 네티즌들이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는 있으나 아직은 역부족이다.


자 그렇다면 대중들의 성향은 원래 팔랑귀에 가까운 데다가, 폭발적인 확산 속도를 자랑하는 도구의 도움 탓이 컸기에 마녀사냥을 벌였던 작금의 결과야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 하지만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던 듯싶다. 일부 네티즌들이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SNS을 통해 확산시켜 나갈 때 우리 언론은 과연 무엇을 했던가? 실체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던가? 



그러나 일부 언론이 사건의 진실 여부에 대한 확인 절차 없이 네티즌들이 흘린 사실 그대로를 보도, 이번 사건을 일파만파 확산시켰다는 대목은 뼈아프다. 네티즌들이 특정 사건을 퍼나르기하면서 비난 일색의 여론전을 펼칠 때 언론은 조용히 해당 사건의 실체를 확인하고, 대중들에게 해당 사례가 과연 신빙성이 있는 사안인지를 파헤쳐 이를 올곧게 보도, 대중들의 기울어진 시각을 바로 잡아주어야 하는 게 본연의 책무 아닐까? 


결국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특정 사안과 관련하여 누군가의 일방적인 주장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SNS 등 소통도구가 잘 발달하였다고 하여 이를 이용, 특정 사실을 무턱대고 전파시키는 일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득이 될 리 만무하다. 독에 불과하다. 아울러 언론은 객관적이며 올바른 사실만을 전달, 건전한 여론을 형성해야 할 사회적 책무를 안고 있다. 자성과 자정을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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