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비주류를 향한 시선의 환기 '조작된 도시'

새 날 2017. 2. 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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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몰두한 채 특별한 직업 없이 PC방을 전전하며 일상을 소일하고 있던 권유(지창욱), 그날도 PC방에서 온라인 상에서의 동료들과 함께 게임 삼매경에 빠져들었는데, 게임을 모두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PC방에 놓고 온 휴대폰을 자신이 있는 곳으로 가져다 주면 사례하겠노라는 한 여성의 전화였다.


그는 그녀가 알려준 호텔로 찾아가 휴대폰을 건넨 뒤 사례금을 받고 돌아선다. 그런데 다음날 그의 집으로 경찰들이 들이닥친다. 그가 휴대폰을 건넸던 현장에서 끔찍한 미성년자 강간 살해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가 범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던 권유는 자신은 아니라며 몸부림쳐보지만 모든 사건 정황과 증거들은 한결 같이 그가 유력한 범인임을 지목하고 있었다. 그의 결백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오히려 정상 참작이 이뤄지지 않아 결국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흉악범들만을 모아 따로 가둬놓는 특별 수용소에 수감되는데...



연쇄 살인범부터 마약 무기 밀매상까지 온갖 흉악범들이 득시글거리는 수용소는 지옥과 다름없는 곳이었다. 사방이 높다란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흡사 요새를 방불케하는 환경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제일 두려운 존재였다. 특히 그곳에서 왕초 노릇을 하고 있던 마덕수(김상호)의 그를 향한 자존심을 건 끊임없는 괴롭힘은 권유를 더욱 곤혹스럽게 했다. 


당장 자신의 억울한 처지만으로도 죽고 싶은 심경이거늘 마덕수의 존재는 그의 멘탈을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하는 끔찍한 요소였다. 하지만 자식의 결백을 굳게 믿고 있던 어머니의 지극 정성이 그에게까지 닿으며 꺼져가던 멘탈을 어루만지더니 어느새 다시금 일으켜세운다. 권유가 심신을 가다듬고 마덕수의 악행에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한 건 모두 어머니의 모성애 덕분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스크린 위로 화려한 게임류의 액션이 펼쳐진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대장, 털보, 데몰리션, 용도사, 여백의 미 등 다섯 명의 요원들은 사방으로 총알이 난무하는 혼란스런 상황을 뚫고 오로지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적진 건물 깊숙이 진입한다. 이들 요원들이 펼치는 액션은 신기에 가까웠다. 단 몇 차례의 조준 사격만으로도 적 수십 명이 일거에 스러져간다. 이는 멤버 다섯 명이 온라인 상에서 펼치던 게임속 전투 상황을 실사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장면이다. 



이렇듯 시작부터 관객의 혼을 홀딱 빼놓을 만큼 화끈한 액션신으로 출발하는 이 작품은, 그 뒤로 억울한 누명을 쓴 채 권유가 경찰에 잡혀들어가며 벌어지는 끔찍한 상황과 우여곡절 끝에 수용소를 탈출한 뒤 빚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정신없이 이어지면서 시종일관 빠른 흐름으로 전개된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펼쳐지는 카체이싱과 마치 게임을 방불케 할 정도로 화끈하면서도 기발한 온라인게임속 멤버들의 재능 발휘는 이 영화의 볼거리 가운데 단연 백미로 꼽힌다.


권유가 누명을 뒤집어쓴 채 겪었을 고초는 작품 속에서의 장면과 흐름만으로도 너무 생생하게 다가와 어느덧 아픔으로 변모, 내 심장에 콕콕 박혀오는 느낌이다. 그가 수용소를 탈출하여 여울(심은경)이 차려놓은 따뜻한 밥상과 마주한 채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두 볼을 뜨겁게 적시던 그의 눈물 속에 모든 회한이 담겨있다. 평소 같으면 그다지 감흥이 없었을 어머니나 아내가 차려주던 밥상이 무언가 어려운 상황을 겪은 뒤, 이와 새로이 마주할 때면 우린 흔히 비슷한 감정의 혼란을 겪곤 한다. 정성껏 지은 밥상에는 이렇듯 말로 형언하기 힘든 성정 같은 게 깃들어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권유를 이 억울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인가? 감독이 화려한 액션을 차용하여 이를 영화 마케팅의 전면에 내걸었지만,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건 왠지 따로 있었을 것 같다. 그게 과연 무얼까? 


권유가 얽힌 사건과 그밖의 것들을 모의하고 조작한 범인이 권유에게 했던 발언이 내 뇌리에 이식된 채 잊히지를 않는다. "니가 왜 이런 일을 겪게 되었냐면, 다 부모를 잘못 만난 탓이야" 



이 말은 알고 보면 참 기분이 나쁜 데다가 끔찍하기까지 하다. 그의 또 다른 범죄 물색 대상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늘 빚에 쪼들려 어쩔 수 없이 밤 업소에서 근무하던 힘 없는 한 여성이었다. 권유나 이들에겐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권유는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산다. 그는 특별한 직업 없이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사회의 일반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엔 게임 중독자이자 그냥 폐인에 가깝다. 


그와 함께 온라인게임을 즐기던 동료들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특히 권유를 돕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인물인 여울(심은경)은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는 전형적인 히키코모리였다. 이들이 범인의 타깃이 될 수 있었던 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를테면 '게임중독자는 폭력적이다' 따위의 집단적인 편견을 활용하기에 이들이 더없이 적합했고,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씌워도 그에 저항하며 맞서기엔 사회적 지위가 너무 낮고 가정환경 등이 어려운 사회적 약자였던 탓이다. 



때문에 힘없는 비주류이자 사회적 약자들을 범죄의 타깃으로 삼고 있는 이 작품속 범인의 질은 매우 좋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떨까? 우리 앞의 현실은 과연 이와 다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대장(지창육), 털보(심은경), 데몰리션(안재홍), 용도사(김민교), 여백의 미(김기천).. 집단적 편견의 희생양인 이들은 자신들의 숨은 재능을 마음껏 펼쳐보이며 그들을 향한 세상의 시선이 얼마나 삐딱하고 왜곡되어있는가에 대해 온몸으로 저항한다. 그러니까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액션은 덤일 뿐, 다름아닌 비주류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시선의 환기 아니었을까? 



감독  박광현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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