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의 날선 설렘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한 이화동 벽화마을

새 날 2016. 1. 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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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서울에 사는 촌놈이라 외려 서울에 살지 않는 분들보다 서울을 더 잘 모른다. 이를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좋을까. 등잔 밑이 어둡다? 그래, 이 표현이 가장 어울릴 법하다. 볼 일 때문에, 그도 아니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서울 도심이나 특정 지역을 찾곤 하지만 실은 그게 전부다. 그나마도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라 언뜻 스쳐 지나는 곳들은 나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수년 전 유명하다는 곳을 부러 찾았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부암동이었던 것 같다. 분명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번에도 서울 촌놈이 반나절 가량의 시간을 투자해 봤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몇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매우 흔치 않은 기회다. 과감히 전철에 몸을 싣고 4호선 혜화역으로 향한다. 특별한 목적 따위는 없다. 물론 인터넷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얘기에 고무되어 움직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여 발걸음을 옮긴 곳은 다름아닌 마로니에공원 부근이다. 이곳으로부터 연극 공연장이 즐비한 골목길을 주욱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낙산공원이 나온다.

 

 

낙산공원 부근의 성곽길은 야경을 찍는 분들에겐 더없이 좋은 곳이라고 한다. 물론 지금은 한낮인 데다 난 사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3분 가량 올라왔을까? 낙산공원 이정표가 보인다. 제법 가파른 언덕길이긴 하나, 불과 220미터만 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저질 체력이라 해도 이쯤이야..

 

낙산공원을 한 바퀴 휙 둘러본다. 일단 대학로의 혼잡하던 분위기는 온 데 간 데 없고 마치 산속에 들어오기라도 한 양 고즈넉한 분위기 일색이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벤치에 앉아 잠깐 숨을 고른다. 벌써 새해가 시작됐다. 특별히 해놓은 일도 없이 2015년은 그야말로 숨가쁘게 지나갔다. 올 해라고 하여 별반 다르겠는가 싶다. 1월 하고도 며칠이 지나면 어영부영 겨울이 꽁무니를 뺀 뒤 봄이 올 테고, 곧 무더운 여름.. 뭐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지 않은가. 물론 이 또한 내일 이후의 삶이 보장된다는 전제 하에서의 얘기이지만 말이다.

 

 

벤치를 벗어났다. 걸어가던 중 재미있는 조형물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과 개가 하늘을 향해 걷는 형상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만들 때엔 필시 무언가 의미를 담았을 테지만, 나로선 전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왠지 하늘을 걷는 독특한 컨셉이 시선을 확 잡아끈다. 부근에 이화동 벽화마을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익히 들어 왔던 곳이다. 벽화마을이란 개념은 근래 흔한 컨셉 중 하나다. 각 지자체마다 너 나 할 것 없이 인위적으로 꾸며놓고 손님 모시기에 바쁘다. 이곳이라고 하여 별반 다를까 싶지만, 과거 무허가 판자촌이었던 이곳 산꼭대기에 과연 어떤 식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을지 한 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날개 형상.. 그래, TV 등을 통해 숱하게 봐 왔던 바로 그 곳이구나. 아마도 유명 연예인들이라면 누구나 이곳에서 한 차례씩 자세를 잡은 뒤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 싶다. 예상대로 골목 곳곳의 계단에도 알록달록 이쁜 색깔로 그림이 덧칠되어 있다. 청춘 남녀들이 어디선가 예전 교복을 빌려 입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은 이곳에서는 그다지 낯 선 풍경이 아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때문인지 몹시도 쑥스러워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재미있다.

 

 

골목길 안쪽으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보니 철거 예정이라는 빨간색 페인트로 칠해진 건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혹시 이곳도 얼마 남지 않은 건 아닐까? 은근히 걱정스럽다. 혹시나 다른 지역처럼 싹 밀어버리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 따위가 들어서는 건 아닐는지.. 위치를 보아 하니 딱 그러고도 남을 만큼 천혜의 장소이긴 한데 말이다. 난 불순하게도 땅값부터 떠올려 본다. 그래도 서울 도심 한가운데라 만만치 않은 가격일 텐데, 과연 수지 타산이 맞기는 한 걸까?

 

 

그런데 이곳이 중국인들에겐 꽤나 유명한 여행 코스인 모양이다. 온통 중국인 천지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9할이 중국인이다. 상점들도 중국어 안내판 일색이고, 점원들 역시 중국어 사용이 짐짓 자연스러워 보인다. 명동에 나가면 중국 사람들로 인산인해라고 하지만, 비율로 따지자면 오히려 이곳이 더욱 그런 것 같다. 한국인을 만나면 반가울 정도이니 말이다.



기온이 점차 내려가는 걸 몸이 먼저 느끼는가 보다. 오후부터 찬 바람이 불며 추워진다는 예보를 봤다. 미세먼지를 우려했지만, 다행히 이날은 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이 즈음이면 외출하기가 꺼려진다. 중국발 미세먼지와 스모그 그리고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들까지 합쳐져 대기가 온통 엉망이 되는 까닭이다. 늦가을부터 겨울철까지 맑은 대기를 만날 수 있는 날은 이제 손에 꼽을 정도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온갖 희한한 일들이 빚어지는 마당에 대기마저 그를 닮아가는 꼴이다.

 

 

한참을 걸었더니 다행히 추운 줄은 모르겠다. 같은 서울 하늘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 있는 동안만큼은 서울에 와 있는 건지 아니면 서울을 벗어나 이름 모를 관광지에 와 있는 것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이렇듯 콧바람을 넣을 수 있는 곳은 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이유를 들며 등한시해 온 경향이 크다. 반성하는 의미에서, 아울러 앞으로도 이런 식의 마실을 자주 다녀야겠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낮아지는 기온에 적절히 대응코자, 대학로의 유명하다는 한 짬뽕집에 들러 뜨끈뜨끈한 짬뽕을 주문해 본다. 맛? 그냥 생경한 향신료 몇가지가 더해진 짬뽕 같은 느낌이다. 뭐 한 번 정도는 먹을 만 하지만, 다시 찾을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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