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일베 기자 품은 공영방송 KBS를 위한 변명

새 날 2015. 4. 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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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적으로는 극우, 정서적으로는 패륜 성향을 보이며 우리 사회의 건전성을 심각하게 훼손시켜오던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활동으로 논란을 빚었던 KBS 수습기자가 각계 각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식 직원으로 임용됐다.  KBS는 1일 해당 수습기자를 취재 제작 업무가 없는,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으로 발령했노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다지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다수를 이룬다.  KBS가 신뢰를 잃은 지 이미 오래인 탓이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일베와 그 아류 세력들이 벌여온 잇따른 행태로부터 비롯된 각종 논란의 연장선쯤으로 읽히는 상황이다.  물론 이유야 어떻든 우리집 역시 TV 수신료를 꼬박꼬박 내고 있는 입장이기에 KBS의 이번 결정은 괘씸하기가 그지없다. 

 

때문에 사회 일각으로부터의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가 점증하는 현상이 내겐 지극히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다른 직업도 아닌, 그 누구보다 진실을 올바르게 전달해야 할 막중한 책무가 부여된 공영방송의 기자라는 직책에, 비록 입사 전의 일이라 해도 사회가 허용하는 수위를 넘어선 일탈 행위를 일삼아온 일베 출신을 앉힌다는 건 상식적으로나 도의적으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노릇인 탓이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현상은 우리가 일베를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각과 KBS의 그것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빚어진, 그러한 성질의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일베에 대한 KBS의 시각만큼은 보편적인 상식을 갖춘 이들의 그것과 같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공영방송은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이 기본 토대를 이룬다.  사적 이익이 아닌, 전파의 주인인 일반 대중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며, KBS가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내는 대신 시청자들의 시청료로 그 재원을 충당하는 이유 역시 바로 그 때문일 테다.  공영방송이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가치는 다름아닌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에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KBS의 일베 기자 채용은, 일베라는 커뮤니티의 성향과 해당 기자의 과거 행적 때문에라도 공영방송의 기본 가치를 크게 훼손시킨 결과임이 틀림없다.  그의 채용을 통해 KBS는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인하고 나선 꼴이다.  가장 안타깝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KBS라고 하여 고민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가 KBS를 두둔(?)하고 나선 이유이다.  제아무리 공정성과 신뢰를 안드로메다에 내다 판 KBS라 한들 그들의 이번 결정이 어떠한 상황을 초래하게 되는지 절대로 모르는 바는 아니었을 테다.  KBS 조직 내에 일베 기자를 들여놓는 결과가 꺼림직스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가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데엔 몇가지 측면에서 볼 때 분명 나름의 고충이 뒤따랐으리라 관측되는 대목이다. 

 

ⓒMBN 방송화면 캡쳐

 

이번 논란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어떻게 일베 회원을 공영방송 기자로 채용할 수 있는가와 일베 회원이라고 하여 왜 기자가 되어선 안 되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우선 공영방송과 일베의 정체성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극과 극의 지점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일베 회원이 절대로 공영방송사의 기자가 되어선 안 되는 이유이다. 

 

그런데 실질적인 문제로 접근해볼 땐 도의적으로 그를 채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과 실제로 그를 채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사실상 전혀 별개의 사안일지도 모른다.  KBS의 고민도 아마 이로부터 비롯됐음직하다.  논란을 무마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냥 무자르듯 싹을 잘라버리면 쉬울 법하지만 실은 그리 간단치가 않은 모양새다.

 

내외부 법률 자문을 받았으나 입사 이전의 행위에 대한 징계는 불가능하다는 KBS의 입장은 일반인에겐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핑계에 불과해 보일지 모르나, 객관적으로는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사내 규정을 무시한 채 외부에서의 반발이나 논란만으로 무작정 임용 취소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말이다.  이번 논란은 입사 이후가 아닌, 입사 전 일베 행적에 대한 폭로로부터 불거진 탓에 구체적이며 명백한 징계 행위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아울러 회사의 입장에서는 법적 근거와 같은 합법적인 사유 없이 노조를 비롯한 각계에서 요구하는 사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간, 유사한 사안에 부딪힐 때마다 또 다른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니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 문제일 테다.

 

때문에 KBS 역시 이번 논란의 또 다른 피해자가 아닐까 싶다.  이런 사태가 빚어질 경우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가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가 보편적일 테다.  얼마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막말 댓글 판사를 기억해 보자.  그는 논란이 불거진 얼마 후 스스로 사표를 낸 바 있다.  KBS측에서도 해당 기자가 스스로 물러나기를 바랐을 테지만, 그는 꿈쩍도 않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해당 기자는 진정한 멘탈 갑이라 할 만하다. 

 

그와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죄다 사회부로 발령이 나 본격 취재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취재가 없는 부서로 발령이 났다.  이른바 한직이다.  회사 내규상 그냥 자를 수는 없는 문제일 테니, 조직에서 가장 흔히 활용될 법한 한직 발령을 통해 그가 스스로 물러나기를 바랐을 테다.  조직내 동료들은 그의 임용 소식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의 회사 생활이 녹록지 않을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일베 꼬리표가 붙은 그가 제아무리 멘탈 갑이라 해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라도 향후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KBS는 해당 기자 채용으로 인해 졸지에 '일베 방송국'으로 전락했다.  우리 사회에서 일베가 상징하는 무게감으로 볼 때 공정성 훼손이나 정치적 중립 위반 따위의 허물보다 백배 천배는 더욱 뼈아픈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KBS에서 각종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역시 일베 방송국..' 하며 자연스레 '일베'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 공산이 커졌다.  수신료를 거부하겠다는 시민들도 점차 늘고 있다.  때문에 어쩌면 이번 논란의 최대 피해자는 '일베'를 자신들의 조직 안으로 품은, 통 큰 KBS와 결국 자신들이 이겼다며 승리감에 빠져 있거나 우쭐해 하고 있지만 조만간 그의 퇴사 소식을 접하고선 집단 멘붕에 빠져들게 될 '일베' 그대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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